전남 강진군에 있는 영랑생가 모습. 강진군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퀴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은 누구인가. 머릿 속에서 정지용, 신석정 등이 스친다. 질문을 바꿔 '돌담에 속사이는 햇발같이/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이하 생략)'라는 시를 읽어 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면 거의 대부분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이 시의 저자가 바로 한국 시문학파의 선두주자 영랑 김윤식이다. 흔히 김영랑으로 알려진 바로 그 시인이다. 전남 강진에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내 마음을 아실 이', '강물', '가늘한 내음', '노래', '달', '청명' 그리고 '독을 차고' 등의 지은이 김영랑의 생가 '영랑생가'가 있다. 이 곳에서 '돌담에 속삭이 햇발같이'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시가 탄생됐다. 

경제주권을 두고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노 재팬(No Japan) 시대'. 영랑생가를 찾는다면 영랑의 시 '독을 차고'를 꺼내보길 권한다. 많은 이들이 영랑이 말랑한 서정시를 썼던 시인으로 오해하고 있다. 영랑은 윤동주, 한용운에 버금갈 만한 다수의 저항시를 쓴 시인이다. 그 대표작이 '독을 차고'다.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중략)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독을 차고' 중 발췌.

영랑은 영랑생가에서 자신의 많은 대표작을 지었다. 강진군

1930년대 일제는 조선의 성씨를 일본식으로 바꾸라며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또한 국책문학을 내세워 천황을 찬양하거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의 시를 쓰도록 강요했다. 그럼에도 영랑은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영랑의 결의는 그의 삼남이 쓴 '아버지 그립고야'라는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영랑은 일본 경찰의 강요에 "내 성명은 김윤식이다. 일본 말로 발음하면 '깅인쇼큐'다. 즉 나는 '깅씨'로 창씨했다"고 당당히 맞섰다. 영랑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창씨개명을 거부하도록 했다. 또한 영랑은 신사 참배 강요와 양복을 입고 단발을 하라는 일제의 명령도 불복했다. 해방이 될때까지 영랑은 한복을 벗지 않았다. 

영랑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쏜 유탄에 맞아 4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영랑 사후 68년이 흐른 2018년 독립유공 훈장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영랑은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예술인이 받는 금관문화훈장도 2008년에서야 받았다. 강진에 있는 영랑생가는 문학인 생가로는 유일하게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누구보다 순수한 시적 감성과 언어로 추악한 일제의 민낯에 누구보다 강건하게 맞선 영랑. 그의 '항일'이 2020년 '노 재팬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진군(전남)=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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