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이재명과 조광조

김진호의 政治&풀뿌리

-이재명과 조광조

 

 

1519년 조선 중종 14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기묘(己卯)년 해넘이를 앞둔 11월 15일 중종의 총신이자 정국 주도권을 행사하던 조광조가 전격 체포됐다. 지금의 감사원장에 검찰총장을 더한 격인 대사헌 조광조의 몰락은 충격이었다.

더욱 충격은 조광조의 파격적 등용과 몰락, 모두에 중종의 의지가 담겼다는 점이다.

냉혹한 정치의 단면이었다. 중종은 조광조를 내세워 자신을 왕위에 올려 정권을 주무르던 반정(反正) 공신들의 힘을 뺐다. 그리고 힘의 추가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 쪽으로 기울자 냉정하게 조광조를 버렸다.

몰락 나흘 전, 조광조는 중종을 압박해 짧은 벼슬살이 중 가장 혁혁한 개혁조치를 얻어냈다. 반정공신 중 무자격자를 추려내 삭탈한 것이다.

중종은 자신의 정체성과도 맞물린 ‘정국공신 개정’에 극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반정공신들의 힘을 빼고자했지 그들을 퇴출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중종은 사리와 여론을 앞세운 조광조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다.

사실 조광조가 주자학적 소신와 위민(爲民)을 이유로 중종의 뜻을 꺾어 왕권을 바닥에 던진게 한 둘이 아니었다.

왕가(王家)의 장수무병을 비는 소격서를 미신이라고 폐지했고, 고려 충신 정몽주의 문묘종사를 강행했으며 중종과 훈구대신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현량과 실시를 관철했다.

사사건건 갈등하는 가운데 조광조는 죽은 좌의정 신용개의 초상 앞에서 곡하지 않았다고 중종을 나무라는가 하면 임금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항복을 수차례 받아냈다.

패착이다. 조광조가 자신이 키운 자기 사람이라 믿은 중종이 느꼈을 배신감과 낭패감을 간과한 것은. 특히 살아있는 권력인 임금의 역린을 건드리고도 외면했다면 결과는 외통수였다.

조광조는 정치인생의 개화(開花)를 앞 둔 38살, 유배지에서 중종이 보낸 사약을 먹고 죽었다.

경기도의회가 열린 2020년 9월 1일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18일간 일정인 제346회 임시회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의 역점사업들이 모두 발이 묶였다.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공행진을 하며 정치권 블루칩으로 부상한 이재명 지사에게 사활이 걸린 정책들이건만 경기도의회에서 사장됐다.

‘사이다 이재명’의 인기를 입법화하는 정책들로 경기도를 넘어 국민적 관심사였지만 경기도의회에서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배달앱 1위인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 체계변경에 따른 국민적 공분이 일었던 지난 4월, 이 지사는 자체 공공배달앱을 개발하겠다는 당찬 약속으로 경기도민뿐 아니라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경기도의회는 개발사업비 33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공공배달앱에 이은 이 지사의 두 번째 공정정책인 경기도 지방조달시스템 자체 개발사업은 사업타당성과 설계를 위한 용역비 3억5000만원이 전액 삭감돼 시작도 못한 채 좌초했다.

이 지사가 무주택자와 장애인, 고령자 등을 위한 획기적 주택공급 대안으로 홍보했던 ‘경기도형 사회주택’사업은 무기한 보류됐다. 전국 농민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이재명 지사의 대선용 공약이라고 평가받던 ‘농민기본소득’관련 조례 또한 안건 상정조차 못한 채 무기한 보류됐다.

왜일까? 차기 유력한 대선후보이자 민주당 주가 상승을 추동하고 있는 이 지사의 핵심정책들이 민주당주도 경기도의회에서 폐장된 이유가.

왜 일까? 142석으로 구성된 경기도의회에서 절대다수인 135석을 차지한 민주당소속 경기도의원들이 이 지사를 무력화시킨 이유가.

의장과 부의장단, 그리고 각종 상임위원장 전부를 보유한 경기도의회의 구성은 만만치 않다.

일부는 민주당소속으로 기초의원을 상당 기간 역임하면서 중앙당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일부는 국회의원을 보좌하며 국정을 다뤄본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래 차기 여의도행을 꿈꾸고 있다. 일부는 오랫동안 민주당과 부침을 함께하며 풍찬노숙한 순도높은 충성심을 자랑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의도 풍향에 누구보다 민감할 뿐 아니라 나아가 정권이나 정국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의 출중함이다.

이들은 사석에서 이 지사가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는 방식으로 자기 정치를 한다고 불만한다. 또 박원순, 안희정 등이 이탈한 차기 대선레이스에서 민주당의 정서나 뿌리의식이 결여된 채 노골적인 정권욕을 보인다고 비토한다.

무엇보다 면면히 흘러온 민주당 정통성에 기반한 동지애가 결핍된 천박한 정치를 한다고 폄하한다.

이러한 이들이 공유한 반감이 있다면 이는 경기도 집행부를 향한 의회의 견제기능이나 개개인의 불만이 아닌 정권 내부의 공유된 정서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 크고작은 선거는 이러한 정서가 어떻게 당락을 좌우하고, 위계를 만들었으며 정권의 성격을 규정했는지 방증한다.

근래 이재명 경기지사의 측근을 자임하는 이들과의 모임에서 이 지사를 조광조에 빗대어 칭송하는 소리를 들었다.(정암 조광조를 감히 이재명 따위와 비교하냐는 질책은 뒤로 한다!)

조광조의 개혁 이미지와 이상 국가를 실현하려던 비전을 이 지사의 그것과 동치시키려는 이 지사 팬들의 레토릭이리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가 차기 대선후보군 중 앞자리에 위치한 것에 한껏 고무된 듯하다. 일찍 터진 샴페인 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들은 조광조의 입신에만 집중할 뿐, 왜 그가 만월(滿月)이 되기 전에 사라져야했는지는 간과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이 지사의 사이다발언은 야당은 물론 대통령과도 대립한다. 때론 국무총리, 기재부장관, 당대표를 곤혹스럽게 한다.

이 지사는 “옳은 소리는 해야한다”며 자신의 길을 재촉하고 있지만 민주당내에서 ‘팀 킬’이라는 볼멘소리가 거세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총선단상이 있다.

지난 4월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의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경기도 부지사, 대변인, 특별보좌관 등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낙마했다.

이 과정에서 각인된 것은 이들이 열외없이 본선까지 가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거나 아예 당내 심사과정에서 컷오프되는 비운을 맞았다.

문 정부의 남은 임기가 짧아지면서 레임덕현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정권은 힘이 있다. 특히 민주당내 정치지형을 들여다보면 문 대통령과 그 지지층의 후원없이 당내 후보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국민만을 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포퓰리즘이 내재된 서생적 이상만 가지고는 이 지사의 큰 꿈은 꿈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부사장 김진호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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