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동호 기자] 최근 급증한 시중 부동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증권사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대형 증권사들은 국내 주식은 물론 해외 유망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 다양한 투자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랩 어카운트 상품을 앞세워 고액자산가를 유혹하고 있다.

특히 증권사에 투자금을 맡기면 증권사가 알아서 여러 자산에 투자해주는 일임형 랩 어카운트는 시장 상황에 맞춘 적절한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이 가능하고 투자자가 투자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 쉽고 편리한 투자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펀드 환매중단 사태 등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랩 상품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올려주는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정부의 계속된 부동산 규제강화로 시장을 이탈한 자금은 물론 주식투자자 대주주 요건 강화로 직접 투자에 부담이 커진 자산가들의 랩 상품 가입도 늘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일임형 랩 어카운트로 시중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픽사베이

증권사 일임형 랩 자산, 120조원 훌쩍 넘어서며 '인기몰이'

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일임형 랩 어카운트 계약자산은 총 120조 887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앞선 6월말에 비해 무려 4조 7675억원이 늘어난 수치다.

랩 가입 고객수와 계약건수도 각각 1978명, 2630건 늘어난 173만2176명, 190만8597건을 기록했다. 계약건수가 고객수를 다소 상회하는 것은 감안하면 일부 고객이 2건 이상의 랩 계약을 맺었다는 얘기다.

일임형 랩 가입자수와 자산규모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3년 전에 비해 가입자수는 25만명 가량 늘었으며, 자산규모 역시 15조원 가량 증가했다.

특히 올해 초 전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는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급격히 키우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전문투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정보와 시간이 부족한 개인들은 변동성 확대로 인해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투자 자금만 맡기면 증권사에서 맞춤형 전략을 구사해 투자하는 일임형 랩 상품의 인기도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 및 주식시장에 대한 정부의 세제 강화 등으로 인해 직접 투자자의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자금의 이동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계속된 저금리 상황 역시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랩 상품의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증권사들이 다양한 랩 상품을 선보이며 고객 유치에 나섰다./연합뉴스

증권사, 다양한 랩 상품 선보이며 고객 유혹

이를 감지한 증권사들도 랩 상품의 가입 문턱을 낮추며 보다 많은 투자자 유치에 나섰다. 과거 랩 상품의 경우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 이상인 상품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엔 1000만원 이하 가입 상품은 물론 10만원대의 적립식 투자상품도 등장했다.

투자처 역시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해 단순 국내외 우량주식에서 벗어나 고배당 상품, 성장주, 테크주, ETF 등 다양한 투자전략을 구사하는 상품이 늘고 있다. 이로 인해 고객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시장 규모도 더 커지는 모습이다. 

KB증권의 대표적인 랩 상품인 'KB에이블 어카운트'는 출시 3년 3개월 만인 이달 중순 잔고 5조원을 돌파했다. 투자자들은 이 상품 하나를 가입함으로써, 하나의 계좌에서 국내외 주식, 채권,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투자 자산을 거래하고 관리할 수 있다. KB증권은 최근 코로나19 이후 미국 언택트 관련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장 상황을 반영해 'KB 에이블 미국 대표성장주랩'을 출시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는 "하우스 뷰(시장전망)를 바탕으로 고객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자산 배분형 서비스를 적극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시장 상황에 맞춘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달 초 애플, 넷플릭스 등 미국 IT 관련 주식에 초점을 맞춘 '한국투자 Z세대 플렉스랩'을 출시했다. 신한금융투자도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식과 ETF에 투자하는 '신한 해외 프로주식랩' 상품을 선보였다. 미래에셋대우와 삼성증권 역시 각각 '글로벌 슈퍼스탁 랩어카운트'와 '글로벌1%랩' 등 해외 주식에 집중 투자하는 랩 상품을 내놨다.

KB증권의 대표 랩 상품인 'KB에이블 어카운트'가 잔고 5조원을 돌파했다./KB증권 제공

단기간 1000억원 이상 자금 몰려는 랩 '속속' 등장

최근 랩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단기간에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상품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 25일 ‘하나 고배당금융테크랩’과 ‘하나 고배당금융테크랩V2’의 누적 판매액이 10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출시된 ‘하나 고배당금융테크랩’은 국내의 대표적인 4차산업 기업인 삼성전자와 안정적 고배당이 강점인 3대 금융지주에 분산 투자해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코로나19로 급락했던 글로벌 금융시장이 이후 바로 반등에 성공해 안정을 찾으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하나금융투자는 시장 트렌드를 반영해 투자종목을 더욱 확대한 ‘하나 고배당금융테크랩V2’를 지난 8월 잇달아 출시했다. 이 상품은 ‘하나 고배당금융테크랩’의 확장판으로, 펀더멘탈 분석과 퀀트 분석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리밸런싱으로 시장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온창 하나금융투자 IPS본부장은 “코로나19는 투자자들에게 투자의 기회를 제공한 글로벌 이벤트”라며 “‘하나 고배당금융테크랩’시리즈는 꾸준한 리스크 관리와 차별적인 운용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NH투자증권의 'NH크리에이터 어카운트'도 출시 8개월 만인 지난 달 1000억원이 넘는 판매고를 달성했다. 올해 초에는 미래에셋대우의 'Global X 포트폴리오 자문형랩'이 1000억원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국내 출시된 해외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랩어카운트 중 단일상품 기준으로 판매액이 1000억원을 돌파한 것은 미래에셋대우가 처음이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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