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최지연 기자] 사진작가 김태진이 '우연한 관계'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 13일부터 오는 18일까지 서울시 중구 퇴계로 비움 갤러리에서다. '우연한 관계'는 일상 속 우연히 만난 사물들을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프레임에 담아낸 작품들로 이뤄진 전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특별하지 않아 미처 눈길이 닿지 않는 것들이 일련의 우연 속에 담아냈다. 하지만 프레임 속 사물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이에 대해 박영택 미술평론가는 "어느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우연히 포착한 이 장면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고 도시에 내장되어 있는 속살과도 같다. 보이는 외관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그 표피에서 만난 이상한 감정이나 상념의 뒤를 추적한다"고 말했다.

- '우연한 관계'는 어떤 작품들로 이뤄진 전시인가.

"시선을 끌지 못하는 소소하고 비근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채집하듯이 사진에 담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사물들이 이미지로 변환되면서 비로소 관람자들의 시선을 끌게 되고 그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의미나 감정, 울림 등을 함께 느껴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 '우연'과 '관계'가 비슷한 결의 단어는 아닌데 전시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필름 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에 암실 작업을 했는데 주로 새벽이나 밤에 작업을 하다 보니 라디오를 켜놓은 채로 작업하는 게 습관이었다. 그렇게 라디오를 들으면서 작업했는데 한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이 '우연한 하루'인 것을 듣고 '우연'이라는 단어가 내 작업과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거기에 이것저것 더해보다가 사진 속 우연히 마주친 사물들을 통해 관객들이 일종의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목을 이렇게 짓게 됐다."

서울 녹번동 ⓒ 김태진

- 무엇보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사진은 스스로에게 다다르는 과정의 독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 역시 나의 독백을 쭉 풀어낸 것들이다. 아직 마침표를 찍은 시리즈는 아니기 때문에 어떤 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여러 감정을 주절주절 표현하려고 했다."

- 작업하면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나 작가가 있나.

"평소 좋아하는 작가는 앗제다. 앗제가 파리 거리를 다니면서 어떤 것들을 배제하고 중립적으로 사진을 촬영한 것을 동경했다. 그리고 필립 퍼키스의 작품도 좋아한다. 소소하게 걸어 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니까. 영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창하지만 이런 사진작가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을 이어간 것 같다."

- 사진 속 사물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텐데.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갇히는 게 아니라 관람자의 수 만큼 다양한 자기 내면의 울림이 있었으면 한다. 신체적인 떨림이나 설렘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공유될 수 없는, 관람자만이 가진 자기만의 감정일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이 사진들을 통해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 신체적인 떨림이나 설렘, 자기만의 감정이라는 게 상당히 추상적이다.

"어떤 단어로 표현될 수 없는 느낌이나 분위기인 것 같다. 어떤 한 단어로 규정지으면 그 속에 갇혀버리니까. 누구든 슬픔을 느낄 수 있지만 사실상 그 슬픔은 모두가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부터 정도까지. 어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냐에 따라 저마다의 사연이 있으니까. 그래서 자기만의 감정이라고 표현한 건 사진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날 것의 감정이기 때문에 조금 더 본능적인 느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제주 ⓒ 김태진

- 그렇기 때문인지 작품도 상당히 모호한 느낌이다.

"의도한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사진들보다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중립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사진들을 보고 감정을 끌어내고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하지만 사진은 작가가 선택한 프레임이지 않나.

"사진 자체가 작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지만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이미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사진을 찍으면서 일종의 선택을 했지만 강요의 정도를 줄이고 싶었다. 영화로 따지면 열린 결말이랄까."

- 공감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내가 사진을 찍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결국 나의 작품을 100%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감정을 사진에 담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선택한 거라 더 그렇다. 그래서 공감받지 못할까 두렵지는 않았다."

서울 영등포 ⓒ 김태진

- 요즘 매체가 다양한데 특별히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사진을 시작한 건 쉽게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을수록 어떤 즉흥성이나 만남이 마음에 들어서 좋았다. 중립적인 생각을 단번에 담아낼 수 있으니까.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작업과 사진이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어떤 순간에 느끼게 된 감정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학습된 것들이 첨가되지만 사진은 그 전에 셔터를 눌러 찍을 수 있으니까. 프레임은 선택이지만 결국 사진이 찍히는 그 찰나의 순간에는 작가가 개입할 수 없다. 기계가 하는 거니까."

- 결국 사진이 가진 힘은 즉흥성이라고 생각하는가.

"진부한 얘기 같지만 거기에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사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에 담긴 것 자체가 그 순간에 거기에 실존했다는 걸 증명하는 거다."

- 앞으로도 '우연한 관계'는 계속 작업할 생각인가.

"계속 이어갈 것 같다. 이 시리즈로 사진집을 내는 게 하나의 목표다. 지금 전시회에 있는 작품이 그때는 책에 담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시리즈는 계속 작업하고 싶다."

-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전시를 볼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사진들로 어떤 나만의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으면 한다. 트라우마나 억압된 기억들이 불쑥 올라와서 다시 관계를 맺듯이 소통했으면 좋겠다. 사진이 어떤 설렘으로 다가가고 떨림이나 울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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