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양지원 기자]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도 의미 있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1일 개봉한 이 영화는 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동시기 개봉작 ‘소리도 없이’ ‘미스터트롯: 더 무비’ 등을 제치고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다. 대작도 아닌데다 코로나19로극장가가 침체된 시기에 개봉한 상황 속 이룬 결과라 더욱 의미가 깊다.

■ 말단 직원의 반란..통쾌한 카타르시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 입사 8년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인 회사 토익반을 같이 듣는 세 친구가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는다. 1991년 구미에서 있었던 낙동강 폐수 유출 사건을 토대로 한다. 고아성, 이솜, 박혜수 등이 주연을 맡았다.

26일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개봉 첫 주말인 23일부터 25일까지 27만859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주말 이틀 간 10만 명 이상의 일일 관객을 동원하며 극장가 가뭄을 해소시키는 단비같은 존재를 톡톡히 하고 있다. 총 제작비 79억 원에 달하는 적은 예산의 상업영화가 이룬 결과다.

‘1995년, 회사와 맞짱뜨는 용감한 친구들’이라는 홍보 문구처럼 영화는 회사의 비리를 알게 된 자영(고아성), 유나(이솜), 보람(박혜수)이 부조리한 대기업의 민낯을 파헤치는 과정이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회사를 향한 반란이자 말단 직원들의 유대가 돋보인다.

특히 시대적 배경 상 기업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과정 속 사회의 차별도 눈에 띈다. 말단 여직원은 상사의 커피를 타는 게 일상이고, 심지어 짐까지 치워야 한다.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과 승진의 한계, 결혼해서 임신한 여성은 경력이 단절될 수밖에 없는 환경, 남녀 직원의 임금 격차 등 온갖 부조리한 상황이 펼쳐진다.

영어토익반에 모인 세 친구들 중 회사의 부조리를 가장 먼저 파악하는 인물은 자영이다. 상무의 짐을 챙겨주던 자영은 금붕어를 강에 방생하다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걸 목격한다. 세 친구들은 힘을 합쳐 삼진그룹의 검은 폐수 유출 증거를 찾고 이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들은 고졸 출신이라는 것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은 차별과 편견을 끊어간다. 특히 회사에서 주로 잡무를 해오던 이들이 작은 힘을 모아 비리 집단을 척결하는 순간은 뜨거운 카타르시스와 공감을 형성한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연대’의 힘 역시 이 영화가 지지를 받는 이유다. 단절이 아닌 유대를 택한 세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하고 용기를 주는 모습은 감동을 선사한다. 또 보람과 봉현철 부장(김종수)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에피소드 역시 영화의 명장면으로 자리잡았다는 평이 이어진다.

■ 1990년대 향수 자극..전세대 취향 저격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관객들의 흥미를 자아낸 또 다른 이유는 시대적 배경이 1990년대라는 점이다. 모든 게 다 빨라진 정보화시대와 상반된 과거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1990년대가 낯선 젊은 세대에게는 흥미를, 기성세대에게는 향수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톡톡히 하고 있다.

메가폰을 잡은 이종필 감독은 1995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조금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낭만이 있는 시대, 1995년을 유쾌한 분위기로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과거인만큼 사소한 소품부터 의상, 메이크업까지 철저한 고증 과정을 거쳤다. 배정윤 미술감독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 부분들은 스태프들의 기억력에 의존했기에 단순히 90년대의 미술을 세팅하는 의미를 넘어서 모두의 추억을 되돌아본 경험이었다”라며 만족해했다.

배우들 역시 1990년대를 연기하며 당시 인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갈매기 눈썹과 짙은 립라인, 오버핏 트렌치코트 등 다양한 아이템을 활용해 시대를 재현했다. 현장의 ‘아이디어 뱅크’로 불린 이솜은 스태프들과 함께 동묘에 가서 직접 스타일을 구현하기도 했다. 이솜은 “90년대 느낌이 나는 의상과 아이템이 참 많았다. 의상팀과 상의하며 함께 준비했다”라고 했다. 파격 단발머리로 변신한 박혜수는 “1995년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영화 속 장면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이 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정서가 묻어난 것 같아 좋다”라고 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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