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자가 거주 시간 증가에 층간소음 갈등↑
이웃사이센터 등 중재기관 있지만 법적 강제성 없어 '무용지물'
"층간소음 진단 인력 확충 등 대책 마련 절실"
서울 목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한스경제=김준희 기자]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A씨는 요즘 층간소음으로 인해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이미 동네 지구대도 한 차례 오갈 만큼 한바탕 다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하겠다고 판단해 국가에서 운영하는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민원 접수를 했지만 상담해도 강제성이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소송까지 불사하려 했지만 변호사 비용 1000만원에 피해보상비는 100~2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2일 경남에선 평소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이웃에 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40대 A씨가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지난 3월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서 위층 거주자 B씨를 불러내 주먹과 발로 얼굴과 다리 등을 수차례 때려 전치 30일 상당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23일 대전에선 40대 C씨가 층간소음 문제로 위층에 올라가 항의하던 중 같은 층 옆집에 사는 이웃 D씨(60대)로부터 핀잔을 받자 홧김에 흉기를 휘둘러 D씨를 살해하고 다툼을 말리던 D씨의 아들 E씨(40대)를 다치게 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는 사례도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층간소음 갈등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층간소음 접수 건수’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전화 상담 건수는 2만2861건으로 지난해 1만7114건에 비해 34% 증가했다. 현장 진단 접수 건수는 7431건으로 지난해 5075건에 비해 46% 늘었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민원 접수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 민원접수 1920건에서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뒤 ▲3월 3110건 ▲4월 2539건 ▲5월 3339건 ▲6월 3196건 ▲7월 3268건 ▲8월 2822건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층간소음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어도 도시 주거 형태가 아파트 위주로 재편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민들 간 불화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서 배포한 '이웃4촌 함께하는 층간소음1234캠페인 홍보 포스터'.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제공

층간소음 업무 기관 다수 존재하지만 법적 강제성 없어 '유명무실'
현재 층간소음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는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국토교통부 산하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와 중앙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 등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기관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웃사이센터는 ‘이웃 간 의견 중재로 층간소음 갈등 완화에 도움을 주는 상담센터’라고 소개돼있다.

공식적인 상담절차는 ▲전화상담 ▲방문상담 ▲소음측정 순으로 진행된다. 최초 민원인과 전화상담이 진행되고 해당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 등 관리주체 중재에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이웃사이센터에서 방문상담과 소음측정을 실시한다.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당사자 간 합의를 도모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센터 측 권고에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인 해결책은 전무하다. 그저 갈등을 중재하는 차원일뿐이다. 실제 이웃사이센터를 이용해본 커뮤니티 회원들의 후기를 들여다보면 “뭔가 해결해줄까 기대했는데 나아지는 건 전혀 없고 그냥 양쪽 비위 맞춰주는 게 끝”, “양쪽 이야기 듣고 중재해주는데 특별한 해결책은 없었다” 등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글이 다수다.

이에 대해 센터 측 관계자는 “센터 업무가 말 그대로 ‘중재’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해결을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상담이나 소음측정도 중재용으로만 해드릴 수 있는 상황이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렵다. 법적 해결을 원할 경우 민사소송 또는 중앙 및 지역별 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안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갈 경우 ‘환경분쟁조정법’에 의거해 알선, 조정, 재정 등 분쟁조정이 진행된다. 재정 혹은 조정이 행해지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명시돼있지만 법적인 강제성은 결여된다. 이 또한 당사자 간 합의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다.

또 다른 층간소음 업무 담당 기관인 중앙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달 박상혁 민주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살핀 결과 5년간 접수한 분쟁건수가 35건에 불과하고 그 중 조정건수는 7건으로 조정률이 20%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유령 조직’인 셈이다.

결국 피해자들은 마지막 수단인 민사소송까지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소송 기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변호사 선임 비용도 만만치 않다. 소송을 위해선 국가에서 공인하는 측정 결과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집을 비워야 하고 비용도 발생한다. 승소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금전적 보상이 작아 실익을 취하기 어려운 구조다.

도움을 요청할 곳이 사라진 피해자들은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향했다. 층간소음 관련 청원을 작성한 글쓴이는 “아파트 층간소음 법 좀 만들어달라. 아랫집만 고통받는다”며 “오죽하면 보복소음을 하겠느냐. 층간소음을 법으로 규제하고 시간에 따라 소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국민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진단 인력 확충 등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박상혁 의원 또한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과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전국 분쟁조정위가 5년간 35건의 분쟁을 맡았다는 건 구색 맞추기 행정의 소산”이라며 “지금이라도 분쟁위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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