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野, '박근혜 승리 대선'서 'NLL 의혹' 쟁점화…4월 보궐선거는 '원전 의혹' 파상공세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 노무현재단 제공, 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을 둘러싸고 여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야당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USB (휴대용저장장치)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는 4월 보궐선거를 겨냥한 '북풍 공작'이자 '색깔론'에 기반한 정치공세라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른바 '김정은 USB'에 대해서도 공개불가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남북 정상간 신뢰 유지라는 명분 속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곤혹을 치렀던 'NLL 의혹' 처럼 야당의 선거전략에 주도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문 대통령에 대한 '북한 원전건설 은폐 의혹'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NLL 포기발언 의혹'은 각각 남북정상회담(2007년·2018년)을 토대로 선거(2012년 대선·2021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불거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야당이 제기한 'NLL 의혹'이 쟁점으로 떠오르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던 장본인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나눴던 대화에서 "NLL 포기"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불어난 '종북 의혹'은 2012년 대선 패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여당의 인식이다. 당시 국가정보원이 '박근혜 선대위'에 남북정상 대화 원문을 제공했다는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이 뒤늦게 제기됐지만 이는 문재인정부 집권과 '국정원 적폐청산 TF' 발족을 거쳐 2017년 11월이 돼서야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회고록에서 '종북 프레임'을 "사악한 주술"이라고 표현하며 "민주당과 민주진영 전체를 종북으로 매도하는 데 대해 무력했던 것이 나와 민주당의 (2012년 대선) 결정적 패인"이라고 회상했다.

2014년 5월 8일 새누리당(現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원내수석부대표 고별 기자회견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냐, 안 했냐(를 두고) 여야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인 것을 기억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NLL 포기'란 말을 한 번 도 쓴 적이 없다. (오히려) 김정일이 포기란 말을 4번 쓰면서 포기라는 단어를 유도했다"고 털어놨다. 윤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의혹'을 앞장서서 비난하고 당시 대야 강경론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윤 의원은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께서 NLL을 포기할 수 있겠나.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어떻게 우리나라 영토를 포기할 수 있었겠나"라며 "그것은 아닐 것이다. 노 대통령은 NLL을 뛰어넘고 남포에 있는 조선협력단지, 한강 허브에 이르는 큰 틀의 경제협력사업이라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고 덧붙였다. 당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윤 의원의 발언에 대해 "솔직히 인정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며 "국정원장에 놀아난 새누리당 지도부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불거진 '북한 원전의혹'과 관련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정부의 '이적행위' 근거로 내세운 '산업부 원전문건'은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내부 검토에 활용한 자료인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심지어 해당 문건을 삭제한 이유가 '북한 원전건설 추진계획 은폐'라고 주장하던 야당은 정작 문건의 원본이 남아있고 원문까지 공개되자 이번엔 '실제로 원전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문건을 남겨둔 것 아니냐'고 말을 바꾼 상황이다.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정의용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2일 "북한과 대화 과정에서 원전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며 당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도 동일한 내용이 담긴 USB를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야당은 다음날인 3일 국회에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야당이 '의혹 규명' 보다 '의혹 확대'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의식한 듯 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무책임한 마타도어(흑색선전)나 선거용 색깔론이 아니면 야당도 명운을 걸어야 되는 것"이라며 "그러면 그에 상응하는, 청와대에서도 책임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조건부 공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산업부가 공개한 문건에서 문재인정부가 건설을 중단시킨 '신한울 3·4호기 건설 후 북한으로 송전' 하는 방안을 포함시켰다는 점도 '북한 원전 의혹'에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탈원전 등)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정책과 반대로) 원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산업부 공무원들이 있을 것"이라며 "'원전 마피아'라고 부르는 그룹이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고 개인의 소신일 수 있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실제로 '판문점 회담'을 전후로 일부 언론은 북한에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한 예로 중앙일보는 2018년 8월 11일 칼럼에서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기는 쉽지 않지만 에너지 효율 제고나 풍력발전 시설 설치 등은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김정인 중앙대 교수의 발언을 싣기도 했다. 강훈식 의원이 "남북정상이 만났고 한편에선 언론들이 원전을 북한에 짓자고 하던 때라면 산업부의 담당 실무자가 충분히 (자체) 검토할 수 있는 내용이지 않느냐"고 반문한 배경이다.

한편 파이낸셜뉴스가 3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논란이 된 산업부의 '원전문건'과 동일한 제목으로 한국전기연구원이 2009년 작성한 보고서도 북한 원전 건설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두 보고서의 내용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에서 산업부 문건도 해당 보고서를 검토해 작성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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