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부패방지법·공공주택특별법·농지법 등 위반 혐의 검토 中
"내부 정보 이용 및 이득 시현 여부 확실치 않아 적용 어려워"
LH 일부 직원들의 광명ㆍ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의 한 토지에 8일 오후 산수유가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김준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발본색원’, ‘패가망신’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사전투기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했지만 현재로썬 법적 처벌 근거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LH 직원뿐 아니라 신도시 예정지인 광명·시흥 소속 공무원들의 토지 취득 사실도 속속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은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국세청과 금융위원회 포함 770명 규모에 달하는 매머드급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를 구성하기로 했다.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현안질의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현행법상 처벌이 가능한 범죄 구성 요건과 처벌 수위를 조사하니 부패방지법, 공공주택특별법, 농지법, 한국토지주택공사법 이 4가지 법 외에는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다”며 “이 4가지 법으로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패가망신을 시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변 장관이 “부패방지법을 통한 처벌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부패방지법은 제7조 2항과 제86조 처벌조항은 이득을 시현해야 되는 것”이라며 “이번에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들은 토지를 보상받거나 매각을 통해 이득을 시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패가망신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현행법으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저도 대법원 판례 10개를 조사했지만 쉽지 않다”며 “패가망신을 시키려면 직위해제 갖고는 안된다. 재산상 몰수를 해야 패가망신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방지법 제7조 2항에 따르면 공직자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취득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은 몰수 또는 추징하도록 돼있다.

김 의원이 지적한 부분은 부패방지법 적용을 위해선 이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토지를 매입했고, 이를 통해 이득을 시현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입증돼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인 LH 직원 13명은 국토부 확인 결과 신규 후보지 관련부서 및 광명시흥 사업본부 근무자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이 아직 보상을 받거나 토지를 매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득을 시현했다고도 볼 수 없다.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변호사는 “의혹 대상자들이 비밀정보를 이용해 투자했느냐 여부는 수사와 재판의 영역이지만 이를 입증한다는 게 쉽지 않아 국민 법 감정과는 상당히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9일 오후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LH임직원 신도시 투기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 공공주택특별법, 농지법 등도 적용 ‘쉽지 않아’
부패방지법 외에 경찰이 적용을 검토 중인 공공주택특별법도 난항이 예상된다. 이 법 제9조 2항에 따르면 업무상 알게 된 개발 관련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주택특별법의 경우 부패방지법과 달리 재산 몰수와 관련한 조항이 없다. 이들이 내부 정보를 활용해 사들인 토지로 이득을 실현하더라도 징역 내지 벌금형에만 처할 뿐, 환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의미다.

농지법 적용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감정평가사협회로부터 받은 검토 의견에 따르면 LH 직원들이 사들인 토지에 묘목을 심은 행위에 대해 “농지법 위반을 회피해 토지보상금을 높게 받거나 대토보상,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세 감면 혜택 등을 받고자 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농지법에 의하면 농지를 보유하고도 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 처분 의무가 발생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토지가액의 100분의 2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 부과 처벌을 받게 되는데 묘목 식재를 통해 이를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 및 법조계에선 법 개정을 활발히 요구하는 분위기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공공주택사업 관련 업무 종사자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50억원 이상 투기이익을 얻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는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미공개 정보로 땅 투기 시 이익의 3배에서 최대 5배까지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해당 개정안들이 통과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지난 사건에 대한 소급적용이 불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투기를 저지른 LH 직원에 대한 처벌이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사용자 일부는 “수십, 수백억원의 차익을 챙기고 벌금은 5000만원에 불과하다니”, “누군 가점 모으며 전세 살면서 청약 준비하는데 누군 사전 정보로 수십억원씩 대출받아 시세 차익으로 잘 먹고 잘 살고”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 10일 LH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이라는 제목의 글은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서 물 흐르듯 지나가겠지"라며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는 글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일각에선 ‘3기 신도시 계획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는 ‘공급대책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투기는 투기대로 조사하되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선 안된다”며 “2·4 부동산 대책 추진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광명·시흥 공무원 토지 취득 확인… 文 “투기 용납 못해”
한편 이번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신도시 예정지 내 토지를 취득한 공직자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임병택 시흥시장은 10일 “시흥시 소속 공무원 8명이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내 토지를 취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8명 중 7명은 해당 지역 내 토지 보유 사실을 자진 신고했으며 1명은 자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고 밝혔다. 최근 5년 이내인 2015년 이후 토지를 취득한 공무원은 3명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토지 취득 과정에서 투기를 의심할 만한 특이사항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자체 조사 과정에서 토지 매입 사실이 확인된 공무원 1명에 대해서는 취득 경위를 추가로 조사하기로 했다.

박승원 광명시장 또한 “신도시 예정지 내 토지를 매입한 소속 공무원이 5명 추가 확인돼 모두 6명이 됐다”며 “해당 공무원들이 업무상 정보를 이용해 토지를 취득했는지 여부는 현재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날 거래 사실이 추가 확인된 광명시 공무원 5명의 토지 취득연도는 2015년과 2016년, 2017년 각 1명, 지난해 2명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개발을 담당하는 공공기관 직원이나 공직자가 관련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건 우리 사회 공정과 신뢰를 바닥으로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공직자의 부정한 투기 행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투기 이익을 철저히 막는 등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제도 마련에 국회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시도경찰청 수사 인력 680명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세청·금융위 직원 등 총 770명 규모에 달하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를 구성했다고 이날 밝혔다. 합수본에는 이번 사건을 맡은 경기남부·경기북부·인천 등 3개 시도경찰청 외에 15개 시도경찰청 소속 경찰관도 포함된다. 합수본 수사는 남구준 국수본부장이 총괄한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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