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성지 내 호숫가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이하 박대웅 기자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여행이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가 정의한 여행이다. 프랑스는 매일을 지나던 길도, 건축물도, 사람들도 새롭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일상으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다. 여행을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고 있다면 전북 완주군의 천호성지를 추천한다. 천주교 신자여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결국 여행이란 건 생각과 편견을 깨는 과정이니까. 
 

천호성당. 

천호성당은 천호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천호마을 안에 있다. 천호산은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의 대둔산 줄기가 서남쪽으로 잔가지를 치면서 뻗어 나가는 전북과 충남의 경계지역에 끝자락에 위치한다. 한마디로 첩첩산중이다. 처음 이 곳에 터를 닦았던 천호마을 주민이 지금의 잘 정비된 도로와 주차장 등을 본다면 아마 '당장 짐을 싸서 도망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천호마을은 병인박해(고종 3년·1866년)를 피해 천주교인들이 숨어들면서 조성됐다. 병인박해는 1866년 흥선대원군이 단행한 대규모 천주교 탄압을 말한다. 6000여 명의 교회 평신도와 프랑스 출신 선교사 등이 처형됐다. 이 사건을 빌미로 병인양요가 발발했다. 

천호성지 내 대나무 길. 

150여 년 전과 달리 4월의 따스한 봄기운을 품은 천호마을은 아름다웠다. 벚꽃이 곳곳에서 흩날렸고, '사그락 사그락' 대나무잎 부딪히는 소리가 청량함을 전했다. 또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앉아 있자니 봄바람이 싱그럽다. 천호마을 위쪽 산기슭에는 성당, 순교자묘, 사제관, 십자가 길이 조성돼 있다.  
 

성물 박물관 내부. 

마을을 둘러보다 성물(聖物) 박물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박물관은 예수의 강생(降生)과 수난, 부활 등을 테마로 유럽 등에서 수집한 성물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예수 및 성모상과 십자가, 묵주, 메달, 패 등과 함께 성경 속 이야기를 담은 다양한 조각상이 배치됐다. 독서대와 제대(祭臺) 성작(聖爵) 성반(聖盤) 초, 향 등으로 '미사 전례의 방'도 갖췄다. 기도를 위한 작은 방도 있다. 신도든 그렇지 않든 특별한 경험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되재성당. 

천호마을과 함께 '되재성당'을 방문하길 추천한다. 되재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중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이다. 한국전쟁 대 완전 소실됐다가 2008년 복원했다. '되재(升峙)'는 화산면 승치리에 위치한 고개를 말한다. 되재성당이 지어지게 된 배경 역시 병인박해다. 천주교 신자들은 험준한 되재를 넘었고 골짜기에서 신앙의 터를 잡고 성당을 지었다. 되재성당은 특이하게 툇마루마다 출입구가 있다.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 출입문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신자석 가운데 설치된 칸막이가 남녀를 구분한다. 어린이와 중년, 노인 문도 설치했다. 

천호마을 내 호수 모습. 

천호마을을 둘러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앉았던 호수 앞 작은 벤치와 되재성당 앞 남루한 의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가벼워지는 명당이다. 여행은 장소가 아닌 생각과 편견을 바꾸는 것이라는 프랑스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천호성지(완주)=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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