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자민당 선거패배·올림픽 흥행 '빨간불' 등 정치적 위기
한일관계 개선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도 부담
문 대통령 방일 간절하지만…과거사 문제로 진퇴양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오는 12일부터 내달 22일까지 도쿄에 4번째 긴급사태를 발령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3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은 긴급사태 기간에 치러지게 됐다. / 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미국 등 서방 제재에 대응을 고리로 북중 밀착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일찌감치 반중(反中)노선에 참여한 일본은 최근 미국으로부터 한국과 관계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주요 7개국(G7)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까지 동원해 중국을 포위한 미국이 '동북아 냉전구도'에서 태평양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완벽한 대중전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최근 중국은 개발도상국 65개국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홍보하며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이들 모두 '중국몽'인 일대일로(육·해상 新실크로드)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식량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고심 중인 북한도 중국을 국제사회 제재를 돌파하기 위한 탈출구로 여기는 모양새다.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하는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는 데다, 북핵 문제를 대미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중국과 이해관계도 맞아 떨어진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북중우호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교환한 친서를 공개했다. 

 

김 총비서는 친서에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을 겨냥해 "적대세력들의 도전과 방해책동이 보다 악랄해지고 있는 오늘 두 나라의 사회주의 위협을 수호하고 추동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안정을 보장하는 데서 더욱 강한 생활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미중 갈등 속에서 확실하게 중국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시 주석도 친서에서 "(김정은) 총비서 동지와 함께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 중조(중북) 관계의 전진 방향을 잘 틀어쥐고 두 나라의 친선협조 관계를 끊임없이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나감으로써 두 나라 인민에게 더 큰 행복을 마련해줄 용의가 있다"고 화답했다. 식량과 코로나19백신 등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연합뉴스

북중이 밀착하는 가운데 오는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앞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속내는 복잡하다. 

 

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국 협력'을 원하는 미국의 압박을 차치하더라도 스가 총리는 문 대통령의 방일이 간절한 상황이다. 

 

일본정부는 오는 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3959억엔(4조 2000억원)을 투입했지만,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면서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자국 내에서 조차 '정치적 치적을 위해 올림픽을 강행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 개막식 참석 의사를 밝힌 해외 정상은 에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일하다. 미국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도쿄올림픽 강행은 스가 총리의 정치적 입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지난 4일 치러진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사실상 패해 충격에 휩싸였다. 앞서 4월 3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까지 포함하면 2번째 패배다. 때문에 오는 9월 전후로 예상되는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에서 '총리 교체론'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자민당의 패배는 일본 내 '도쿄올림픽 여론'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당초 스가 총리는 지난 2분기 백신 4000만회분이 수급된다는 전제로 올림픽 직전까지 집단면역을 이루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절반에도 못미치는 1400만회분만 공급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12일부터 내달 22일까지 6주 동안 도쿄에 네 번째 긴급사태를 발효하기로 하면서 피로감이 커진 도쿄 도민의 반발심도 커진 상황이다. 

 

그간 문 대통령의 도쿄 올림픽 참석 여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일본정부는 개막식을 2주 앞두고 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스가 총리는 8일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온다면 외교상 정중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일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뒀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나간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지만 스가 총리가 문 대통령의 방일 여부와 관련 처음으로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는 관측이 나온다. 

 

11일에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한일 양국이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정상회담 사전 조율작업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다만 신문은 한국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일본정부가 회담을 짧은 시간에 끝낼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스가 총리 입장에서는 문 대통령이 오면 접대해야 하는데 접대할 수 없는 모순"이라며 "일본은 초청하지 않았지만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초청해 문 대통령이 (일본으로) 오는 것이 될 수 있다면, 가볍게 정상회담을 해서 돌려보내는 것이 스가정권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문재인정권 입장에선 한일정상회담이 공식적으로 열리고 여기에 대한 성과도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오길 바라면서도 성과는 주고 싶지 않은 (일본정부의 속내 등) 미묘한 (한일) 관계가 여론전에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열린 '기후변화 및 환경' 방안을 다룰 확대회의 3세션에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실제로 청와대는 일본 측이 확실한 메시지를 내놔야 방일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외교라는 것은 성과가 있어야 서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며 "아무 성과 없이 움직일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청와대의 이 같은 경계심은 지난달 G7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 간 약식 회동에 잠정 합의했지만 일본 측이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문제삼아 일방적으로 취소한 전례를 의식한 결과로 보여진다. 만약 일본 측이 정상회담을 수용하더라도 소위 '알맹이' 없는 약식회담으로 끝내려 한다면 두 번째 외교참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9일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의례적인 정상 간 만남 가능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성과있는 만남이 실제 가능할 것인지는 한일 당국이 서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아마 여러 채널을 통해 (한일정상회담 관련)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다만 과거사 문제 등 한일 간 이슈는 서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얼마나 조율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어서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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