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EU, 원자력계에 실현 불가능한 조건제시...원전업계 ‘자가당착’
월성 원자력발전소 전경./한국수력원자력
월성 원자력발전소 전경./한국수력원자력

[한스경제=양세훈 기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원전을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지속가능 금융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 Green Taxonomy) 최종안을 발표하면서 국내를 비롯한 전세계 원전업계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원전업계 요청대로 그린택소노미에 포함 됐으나, 오히려 원전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며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최종안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4일 에너지전환포럼은 '혹 떼려다 혹붙인 원전업계'라는 논평을 통해  “EU 그린 택소노미에는 강화된 원전 안전성 개선 및 핵폐기물 처분책임 방침이 반영돼 있어 그대로 확정되더라도 국내 원자력계가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고강도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 EU는 최종안에 원전을 포함하면서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확보 및 운영 세부계획 제출·심의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을 핵심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원자력계도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조건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유럽원자력산업협회(FORATOM)는 그간 이 조항들의 삭제를 요청해왔으나, EU집행위는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시점만 2025년으로 연기했을 뿐 그 외 조항들은 최종안에 그대로 유지시켰다.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고온에서도 견뎌야 하는 그야말로 최신 원자력 핵심 기술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지만 실제 상용화 가능성은 미지수다. 지난 50년간 사용돼온 핵연료 설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획이다보니 새로운 원자로 개발에 준하는 기간과 비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핵연료 설계가 변경되면 원자로 핵설계 코드, 열수력설계 코드 등 원자로 안전운전과 관련된 컴퓨터 코드 시스템을 다 갱신해야 하고, 또 갱신된 코드가 안전한지 규제기관이 심사해 면허를 부여해야 한다. 그 뒤에도 기존의 핵연료 공장이 기존 제조공정을 변경해야하는 문제까지 이어져 실제 상용화는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국내 원전 기술은 유럽이 요구하는 안전설계 기준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유럽시장 진출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최근 준공된 핀란드의 올킬루토, 건설중인 프랑스의 플라망빌, 영국의 힌클리포인트 원전은 모두 프랑스전력공사의 EPR원전으로 이른바 선진피동형에 ‘코어캐처’까지 적용된 국내보다 한세대 앞선 설계”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EPR 원전들은 후쿠시마사고 이후 강화된 유럽의 안전규제로 인해 건설 공기가 무려 15년이상 지연되고 있는 상황으로, 거기에 이번 사고저항성 핵연료가 의무화될 경우 국내 원자력계가 수출할 유럽 원전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라고 밝혔다. 

선진피동형이란 원전이 재난으로 정전상태에 들어가도 전력공급없이 자연대류와 중력을 사용해 원자로 노심을 지속 냉각시키는 설계개념이다. 또 코어캐처는 원자로 노심이 용융하더라도 이를 더 확산시키지 않고 차단하는 설계개념을 말한다.

또 다른 문제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확보다. EU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하고 운영할 세부계획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고준위 방폐물을 최종 처분장을 확보한 국가는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밖에 없다. 두 나라역시 최종 처분장 부지 확보에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고 운영도 2030년대에나 가능한 상황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은 “EU 그린 택소노미는 금융지원 조건이지만 각국 전력시장의 참고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이 조항들은 오히려 향후 신규원전과 수명연장에 실질적인 규제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이번 EU 집행위원회의 최종안은 독일을 비롯한 일부 회원국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원자력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2021년 재생에너지(풍력)와 천연가스 공급 불안정으로 에너지 대란을 겪은 EU가 경제적이고 안정적이며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의 중요성을 체감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 지침서’를 발표하면서 원자력 발전을 제외했다”며 “이로 인해 신규 원전 건설, 차세대 원전 기술 투자의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고, EU도 원전을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데 반해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EU집행위의 그린 택소노미의 최종안은 이후 4개월동안 EU의회에 검토기간(필요시 2개월 연장)을 주고 의원과반(EU의회의원 353명 이상)의 반대가 없으면 원안대로 통과된다.
 

양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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