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글로벌 금융사 위주 보안키 보관·관리 수탁업 진출 가시화
국내선 제도권 편입 후 관련법 정비 선행 필요
/연합뉴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비트코인 탄생 이후 가상자산 시장이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이에 금융권도 향후 미래의 먹거리 시장으로 가상자산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국제기구도 이젠 가상자산에 대해 전통적 의미의 ‘화폐’로 부르긴 주저하고 있지만 ‘자산(asset)’으로 규정할 만큼 존재감이 높아졌다. 

이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는 가상자산에 대해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주요 상품군”으로 평가했으며 보스턴 컨설팅그룹은 글로벌 가상자산의 거래 규모가 2021년 말 기준 4300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내 거래대금도 이미 300조원을 돌파했다. 가상자산은 2026년까지 연평균 20%씩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1000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도 2021년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시가총액이 작년 말 기준 55조 2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개인을 물론 기관투자자들의 가상자산에 관심을 보임에 따라 제도권 편입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심현정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수탁서비스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가상자산 투자 수요 증대 ▲제도 변화의 가능성 ▲수익구조 다변화 ▲사업 경쟁력 ▲리스크관리 용이 등의 측면에서 국내외 금융회사들이 가상자산 관련 사업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CFO 직함에 ‘코인 마스터’를 추가한 테슬라처럼, 글로벌 기업의 가상자산 투자, 기관투자자의 상품 출시로 관련 익스포저가 높아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며 국내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2021년 10월 기준, 최소 52개의 글로벌 상장기업이 가상자산 익스포저를 보유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가상자산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사업 모색에 나선 부문은 일종의 수탁업이다. 가상자산 지갑의 보안키(private key)를 대신 보관하고 관리해 주는 서비스로 향후 거래·결제·대여·세금 처리 등의 부가서비스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보안키는 잃어버리면 자산의 접근이나 거래수행이 불가능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형태로 존재하며, 거래소의 경우 빠른 거래 처리를 위해 일종의 온라인 클라우드 서버에 보관하는 핫 스토리지 방식이 많이 사용된다. 그에 반해, 휴대용 OTP와 같은 콜드 스토리지 보안키는 오프라인의 특성상 거래 수행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문제는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 해킹으로 코인 도난 사고가 이어지며 보안키를 대신 보관하고 관리해 줄 필요가 생긴 것이다.

국내의 경우 기존엔 가상자산 거래소가 자회사 등을 통해 수탁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최근 비용 등의 이유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작년 3월 특금법 개정 이후 수수료 수익 대비 인프라 구축과 유지 비용이 과다하다고 본 것이다.

빗썸은 볼트러스트를 통해 2020년 9월 빗썸 커스터디를 출범했지만, 2021년 5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특히 거래소나 벤처캐피탈, 기업을 대상으로 크립토 파이낸스, 장외거래, 스테이킹(가상자산 버전의 예금), 스마트 에스크로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업비트는 자회사 DXM을 설립, 기업용 수탁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2021년 3월 이를 정리하고 거래소가 직영하는 형태로 바꿨다.

특금법 개정으로 금융사들이 가상자산 관련 비즈니스를 검토해 볼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됐지만,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선 업권의 관련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우선 시중은행의 경우, 현행 은행법 아래에선 가상자산 사업을 직접 영위할 수 없다. 은행법 상 은행의 취급 가능 업무범위 또는 부수업무·겸영업무에 가상자산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트렌드의 변화로 가상자산 관련 사업체와 합작법인 설립, 지분 투자 등의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만 제도 정비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20년 11월 블록체인 기업 해치랩스, 투자사인 해시드와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했다. 한국디지털에셋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클레이에 대한 법인 수탁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보안키 보관과 스테이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월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전략적 지분투자를 진행했다. 넥슨의 지주사인 NXC, 알파자산운용 등의 가상자산 수탁을 제공하고 있는 KDAC는 가상자산거래소 코빗, 블록체인 기업 블로코, 디지털자산 리서치회사인 페어스퀘어랩 등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 곳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7월 코인플러그와 합작법인 디커스터디를 설립했다. NH농협은행도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전문기업 카르도에 지분 투자를 진행했다. 

증권사도 내부적으로 TFT를 구성,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대표적이며 국내선 은행 외 금융사 최초로 가상자산 수탁사업 진출을 발표했다.  합작투자 방식의 기관 대상 수탁사를 설립, 향후 NFT까지 포괄하는 코인은행을 연내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SK증권은 피어테크와 수탁업 추진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글로벌 금융사들의 가상자산 관련 사업 추진도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피델리티는 전통적인 금융회사 중 가장 먼저 가상자산 수탁업에 진출한 사례로 볼 수 있다. 2018년 10월 자회사인 피델리티 디지털 에셋을 출범했고, 2019년 3월부터 패밀리오피스,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 대상 비트코인 수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수탁업 진출 이전에는 비트코인 채굴이나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협력하는 과정을 거쳤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국내 금융권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은 기업이나 기관투자자 대상 외에도 개인고객 대상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거나 준비 중이란 점이다.

BBVA 스위스는 지난해 6월 가상자산을 포함하고자 하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6개월의 테스트 기간을 거쳐 PB고객에게 가상화폐 거래와 수탁 서비스를 개시했다. 베스트(Vast) 뱅크는 미국 은행 최초로 지난 2021년 8월 개인고객까지 포함한 가상자산 매매, 수탁 서비스를 시작했다.

박종훈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