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법을 지키지 않는 기관을 꼽으라면 단연 국회다. 입법기관이 툭하면 법을 어기는 역설은 아마 한국 국회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상습적인 법 위반은 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전반기 국회는 지난달 29일 추경안 처리를 끝으로 개점 휴업 상태다. 그 사이 국내외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물가와 은행이자는 오르고, 원화 가치와 주가는 급락했다. 수출기업은 당연하고 내수기업까지 위기 상황이다. 고물가 탓에 소비심리는 잔뜩 얼어붙었다. 당장 주말 가족 나들이조차 여의치 않다. 다락같이 오른 기름 값에다 고물가 때문이다. 저녁 밥상을 준비해야 하는 주부들에겐 최악이다.

채소류부터 계란, 삼겹살까지 안 오른 물건이 없다. 기업과 가계를 가리지 않는 경제 한파는 끝을 가늠하는 게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먹구름은 짙다. 어느 때보다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국회는 참으로 한가롭다. 국회법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후반기 원 구성을 끝내야 했다. 그런데 한 달 째 국회의장도 부의장도 없다. 상임위 위원 배정도 안됐다. 그들 눈에는 퍼펙트 스톰이 보이지 않나보다. 여야 대립에다 당내 갈등으로 날 새기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몇 가지 장면만 복기해 보자. 국회와 정치인들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 자신들 책무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지난주 언론보도는 한심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국민의힘은 당내 주도권을 놓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준석 대표와 윤심을 대변하는 배현진 최고위원 간 대리전은 민망할 정도였다. 전날 배 최고위원과 언쟁을 벌였던 이 대표는 이날 배 최고위원이 내민 손을 야멸차게 뿌리쳤다. 배 최고위원이 이 대표 어깨를 치며 수습해보려 했지만 회의장 분위기는 싸늘했다. 국민들 눈에 비친 집권여당 최고위원회의는 봉숭아 학당과 다를 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8월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에 출마하느냐를 놓고 내전 상황이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도 아직도 뭐가 중한지를 모르는 형국이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대선 패배 원인을 분석하고 일신하는 게 맞다. 한데 계파 싸움으로 흥건하다. 이 의원 출마가 당내 분열을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은 지배적이다. 이 의원은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자성하는 대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어 당대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부정적인 인사들은 검찰수사로부터 보호막을 갖고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려했던 대로 인천 계양을 출마는 당내 갈등을 키우는 동시에 지방선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친문 진영은 이 의원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의원이 당권까지 장악하기 위해 당대표 출마를 강행하면서 계파 갈등은 격화됐다.

후반기 원구성이 늦어지는 직접적 이유는 법사위원장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지난 한달 동안 법사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를 놓고 대치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7월 합의대로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여야가 바뀌고 원내 집행부가 새로 구성된 만큼 다시 논의해야 한다며 맞섰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24일 국민의힘에게 법사위원장 자리를 넘기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협상에 필요한 물꼬는 텄지만 난항은 여전하다. 다른 조건 때문이다. 민주당은 법사위 권한 축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가동,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검수완박’ 취하를 내걸었다. 국민의힘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사위원장은 기존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기에 추가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와중에 국회는 한 달 가까이 멈췄다. 국회가 정상 가동되어도 당장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다. 민생·협치 국회는 시급하다. 협치는 양보를 전제로 한다. 국민의힘은 지난 정권에서 민주당의 일방통행과 독주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제 공수가 바뀌었다고 대화를 걷어찬다면 오만하다. 협치와 관용은 시혜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민주당 제안에 대해 집권여당으로서 조속히 원 구성 협상을 매듭지어야 한다. 국회가 오랫동안 제 기능을 못한다면 그 책임의 절반은 집권여당에 있다. 국민이 피해자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국회가 멈춰선 동안 김창기 국세청장은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됐다. 또 박순애 교육부 장관과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김승겸 합참의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까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한 상태다.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돌아와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박순애, 김승희 후보자는 음주운전 전력과 이해충돌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을 대신해 자질과 역량을 검증하는 건 국회 책무다. 만일 청문회 일정을 잡지 못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국회는 할 말이 없다. 국민들에게 당권 향방이나 계파 싸움, 나아가 여야 힘겨루기는 관심사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안정이다. 국민들은 평소에는 침묵하지만 투표장에서는 냉정하다. 언제까지 당권 다툼과 여야 대립으로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민생을 방치한다면 집권여당이든 야당이든 다음 선거에서 심판은 피할 수 없다. 국회법이 정한대로 조속한 원구성에 나서야 한다. 법을 지키지 않는 국회라면 염치가 없다. 선거 때 국민들에게 했던 말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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