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LIV 골프-PGA 투어 갈등 심화
'오일 머니' 앞세워 '퍼주기식 운영' 그 이유는
지난달 첫 대회를 연 LIV 골프는 PGA와 DP월드투어(유러피언투어)가 양분하던 세계 남자골프계에 '오일머니'를 앞세워 등장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첫 대회를 연 LIV 골프는 PGA와 DP월드투어(유러피언투어)가 양분하던 세계 남자골프계에 '오일머니'를 앞세워 등장했다. /AP 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호진 기자]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를 사수하기 위해 잔류하겠다던 '장타자' 브라이슨 디섐보(29)는 말을 번복하고 돌연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에 참가했다. "자세한 금액을 말할 수 없지만 1억2500만 달러(1629억 원)보다 조금 더 받았다"고 털어놨다. LIV 골프는 600조 원 규모의 자산을 갖춘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후원을 받아 독자적으로 출범했다. 막대한 상금 규모로 세계 정상급 프로골퍼들을 유혹하고 있다. PGA 투어 등 기존 골프계를 대표하던 조직의 반발을 샀다. 결국 LIV 골프와 PGA 투어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LIV 골프의 출범이 비판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37) 왕세자는 2018년 워싱턴포스트 소속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배후로 지목됐다. 사우디는 여성,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국가로도 악명 높다. 특히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주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2개 동이 테러범들이 탈취한 민항기에 의해 파괴된 이른바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당시 항공기 납치범 중 대다수가 사우디 국적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희생자 가족들은 사우디와 911테러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논란을 의식한 듯 대회 기간 현장에는 후원사 광고판이 없고 LIV 골프 로고만 덩그러니 배치돼 있었다. 아직 출범 초기라 거물급 스타들은 없지만, 앞으로 더 많은 스타들을 끌어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PGA 투어는 "LIV 골프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투어 자격을 박탈한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소용없었다. 거물급 스타인 디섐보를 비롯해 패트릭 리드(32)가 이탈했고, 팻 페레스(46)도 LIV 골프에 합류해 PGA 투어의 손을 놓았다.

산유국이 원유를 팔아 벌어들인 외화인 '오일 머니'는 특히 해외축구 팬이라면 모두 한 번씩은 들어봤을 용어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스포츠계에 흘러 들었다. 2003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소속 첼시를 러시아 석유 재벌가인 로만 아브라모비치(56)가 인수하며 세계적인 구단으로 성장시킨 것이 시초다. 이어 맨체스터 시티, 프랑스 리그앙의 파리 생제르맹(PSG) 등도 각각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출신 구단주를 앞세워 대대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구단으로 도약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첼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모습. /AFP 연합뉴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첼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모습. /AFP 연합뉴스

그렇다면 LIV 골프와 해외축구 등은 왜 '퍼주기식' 운영을 감행할까. 표면적으로는 홍보 효과를 노린 것이다. 석유, 석탄 등 자원산업에 의존하는 기업 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조치다. 여러 수단 중 하나로 스포츠가 선택됐다. 일각에서는 부자들이 이미지 세탁을 위해 스포츠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LIV 골프 출범을 두고 엎치락뒤치락했던 지난달 뉴욕타임스는 "빈 살만 왕세자가 2018년 반정부 언론인 살해와 예멘 내전 획책 등 악화된 국제사회 이미지 개선을 위해 최근 수년간 초대형 스포츠 행사에 수조 원의 오일 머니를 뿌려 '스포츠워싱'에 정점을 찍었다"고 전한 바 있다.

스포츠를 말할 땐 돈을 빼놓을 수 없다. 선수나 구단, 팀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선수들의 선의의 경쟁은 관심을 불러 모으고 팬덤을 형성하게 한다. 그렇기에 선수들의 땀과 노력은 돈으로 보상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돈을 악용해 스포츠를 수단으로만 쓰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스포츠는 스포츠로 볼 때 비로소 가치 있는 법이다.

 

김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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