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우크라발 에너지 위기·물가 상승 압박 겹치자 '공공기관에 책임전가' 시각도 
野, '민영화 방지법' 추진…시민사회 "위장된 형태의 민영화" 비판 
전력노조 "대응책 마련 중"…철도노조, 대규모 '민영화 반대' 집회 개최 
철도의 날인 지난달 28일 서울역 인근에서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수서행 KTX 운행과 철도 통합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철도의 날인 지난달 28일 서울역 인근에서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수서행 KTX 운행과 철도 통합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정부가 연일 공공기관 개혁을 강조하자 '민영화를 위한 포석'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크라 사태' 등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에 물가 상승 압박까지 고심해야 하는 정부가 비교적 메스(mes)를 대기 쉬운 공공기관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이다.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철도·전기·가스·공항 등 공기업 민영화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한동안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의 칼을 빼든 것을 두고 일각에선 우크라발(發) 에너지 위기가 도화선이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전기요금 동결'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의 적자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맞물려 취임 후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에 여당에선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전기요금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이마저 "문재인정부가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오히려 탈원전 정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이라는 반박에 부딪혔다. 

실제로 한전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원자력발전량은 15만8015GWH(기가와트시)로 집계됐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14만8427GWH)과 비교해 6.5% 증가한 수치다. 총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은 26.8%였으나, 지난해에는 27.4%로 집계됐다. 탈원전 정책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원자력발전 의존도는 커진 것이다. 이에 일각에선 윤석열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책임을 전가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게 되자 공공요금 인상과 물가 상승 압박 속에서 민심을 다독일 '카드'로 공공기관 개혁을 꺼내들었다는 시각이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공기업이 과하게 방만 경영되고 있다"며 강도 높은 공공기관 개혁을 주문했다. 앞서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도 "경제가 어려울 때 늘 공공부문이 먼저 솔선수범해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강조했다. 하루 전 기획재정부 평가에서 일부 공기업이 '2021년도 경영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자 나온 발언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에게 공기업 경영 현황을 보고하고, '공공 주도 성장'을 내건 문재인정부 시절 공공 부문 인력이 늘어나 부채가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보고 말미에는 "공공기관의 파티는 끝났다"고 강조하며 대대적 개혁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윤 대통령이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질타한 배경이다.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참석자들이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추경호 부총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연합뉴스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참석자들이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추경호 부총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4일에는 에너지 공기업들을 대거 '재무위험기관'에 포함시켰다. 기재부가 발표한 재무위험기관 14곳 중 12곳이 에너지 공기업이었으며, 비(非)에너지 공기업인 나머지 2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에너지 공기업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등 여러 해석이 나왔다. 

추 부총리의 "파티는 끝났다"는 발언은 민영화 움직임을 경계하는 이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 측면이 있다. 과거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 2013년 11월 현오석 기재부 장관도 공공기관장들에게 방만 경영 해결을 지시하며 "파티는 끝났다"고 표현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민영화'는 언급된 적이 없지만, 박근혜 정부는 철도경쟁 체제 도입을 명분으로 수서 고속철도를 분리해 철도 운영기관 'SR'을 출범시켰다. 이에 "철도 노선을 분할해 민간기업에 매각하는 '철도 민영화'의 포석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확대 해석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지만, 정치권에서도 민영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입성 후 첫 법안으로 '민영화 방지법'을 추진한다. 이 의원은 지난달 28일 정부가 국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전기·수도 등 공공기관을 민영화할 때는 반드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고 동의 절차를 밟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공공기관의 수행 기능과 점검·재조정을 포함해 민영화에 관한 계획을 기재부가 단독 수립할 수 있어, 충분한 여론 수렴·반영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시민사회에서도 윤석열정부의 경제 정책은 '위장된 형태의 민영화"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달 23일 '위장된 민영화가 몰려온다'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민영화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인수위 시절 발표된 국정과제 곳곳에 다양한 민영화 추진 계획이 명시되거나 녹아 있어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민영화가 가장 우선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우려되는 분야로는 공공 전력사업을 꼽았다. 

무더위가 이어지며 전력 수요가 증가한 지난 8일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더위가 이어지며 전력 수요가 증가한 지난 8일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와 관련 전국전력노동조합(한전 노조) 관계자는 12일 <한스경제>와 통화에서 "(윤석열정부가 민영화를 위한 포석을 깔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 실제 정책 방향도 '판매시장 경쟁으로 가겠다'는 등 그러한 내용이 있지 않았느냐"며 "정부는 민영화 움직임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민영화로 가는 방향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는 (정부가 민영화에 대한) 여론을 가늠해보는 단계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전기 요금이 워낙 낮은 수준이다보니, 전력산업은 급격하게 민영화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 여러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민영화를) 부정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민영화를 우려하고 반대하는) 광고도 최근 시작했고, 반대하는 주장이 담긴 기고도 하고 있고, 곧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투쟁방향도 토론하려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하루아침에 (정부 정책) 개선이 이뤄질 것 같지는 않아 단계적으로, 차분하게 가자는 분위기다. 단시간 내에 결론이 날 문제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비(非)에너지 공기업이지만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된 코레일도 5년 만에 '철도 민영화' 논란이 재점화됐다. 정부가 차량 정비 업무 일부를 민간 기업에 넘기고, 관제권은 다른 공공기관으로 옮기는 방안 등을 검토한다고 밝히면서다. 정부는 철도 안전과 효율성 제고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전국철도노동조합은 "민영화 수순"이라며 지난달 28일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철도노조는 지난 29일 성명에서 "아무리 뜯어봐도 민영화가 아니라는 국토교통부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국토부의 계획은 지분 매각과 같은 과거의 방식을 탈피했을 뿐, 결국은 민영화를 위한 수순에 다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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