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도=한스경제 이정인 기자]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2시간여를 가면 '천혜의 섬' 덕적도가 나온다. 덕적도는 ‘큰물섬’이란 우리말을 한자화한 것이다. 수심 깊은 바다에 있는 섬이란 뜻이다. '섬사람들이 어질고 덕이 많다’고 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인구 1300여 명의 조용했던 이 섬에 최근 생기가 돌고 있다. 전국을 통틀어 단 하나뿐인 섬마을 고등학교 야구팀 덕적고 야구부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공식 창단한 덕적고 야구부는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학교를 구하고 지역 사회에 희망을 싹 틔웠다. 덕적도 주민들에게 야구는 '일반 공놀이'가 아닌 '희망의 상징'이다. 한국스포츠경제가 야구 인생 역전 홈런을 꿈꾸는 덕적고 야구소년들을 만나 봤다. <편집자주>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는 21세기에 한국이 직면한 난제다. 한국에서 시골 학교의 폐교는 '정해진 미래'라는 말까지 나온다. 종로학원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1982년부터 2021년까지 지난 40년간 폐교한 학교는 3885개에 이른다.

인천 옹진군의 작은 섬 덕적도에 있는 유일한 고등학교 덕적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학생 수 감소로 폐교를 걱정해야 했다. 지난해 덕적고 신입생은 1명에 불과하다. 섬 내 학생들은 학습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9회말 2아웃 위기를 맞았다.

덕적 중ㆍ고등학교 전경. /인천시교육청 제공
덕적 중ㆍ고등학교 전경. /인천시교육청 제공

학생 수가 줄어들고 학교가 없어지는 건 미래가 사라진다는 것과 같다. 지역 소멸이 가속화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폐교를 막아야 했던 덕적고 주민들은 야구에 주목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5·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은사로 잘 알려진 인천 야구의 대부 김학용(70) 전 동산고 감독이 “야구부를 창단해 덕적고를 체육 특성화 학교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동의한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야구부 창단을 추진했다. 덕적고 야구부 창단을 위한 서명 운동에 800명 넘는 주민이 참여했다. 또 섬 바닷모래를 채취하는 건설업체로부터 받은 복지기금 1억 원을 야구부 후원금으로 쾌척했다. 덕적고 교직원과 함께 협의체를 구성하고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회도 결성했다. 지극정성이 통했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해 9월 덕적고 야구부 창단을 최종 승인했다.

인천 연고 프로팀에서 선수, 지도자 생활을 한 장광호(55) 감독이 초대 사령탑을 맡았다. 장 감독은 코치들과 전국 각지를 돌며 선수를 모집했다. 서울, 인천, 경기, 대전 고교 선수들이 덕적고 전학을 택했다. 올해까지 28명이 덕적고로 전학을 왔다. 내년에도 야구부원 13명이 덕적고에 입학할 예정이다. 지난해 전교생 수가 14명에 불과했던 덕적고는 야구부 창단 이후 학생이 39명까지 늘었다. 장 감독은 "야구부를 창단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이 선수 수급인데, 생각보다 빨리 선수 구성을 마쳤다.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덕적고로 오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격려방문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격려방문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선수들은 지역사회의 '활력소'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야구부 창단으로 학생 수가 불어난 덕분에 덕적고 학생들은 조별 활동 등 다양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조용했던 섬마을은 시끌벅적해졌다. 야구부 창단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덕적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야구부가 생기고 섬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적막감만 감돌던 마을에 활기가 생겼다. 야구부를 창단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지난해 10월 덕적고에 처음 들어올 때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한 게 예의다. 야구 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선수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모범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다들 학교 생활도 성실히 해서 교장 선생님이 야구부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신다"고 전했다.

지난해 섬 내 호텔에서 묵던 덕적고 선수들은 이제 옛 옹진군 관사를 리모델링한 생활관에서 숙식하며 6㎞ 가량 떨어진 서포리 종합운동장에서 훈련한다. 서포리 종합운동장은 야구 전용 시설이 아니고, 라이트 시설이 없어 훈련에 제약이 따른다. 다른 고교 팀보다 훈련 환경이 열악한 게 사실이다.

다행히 덕적고를 향한 도움의 손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파르마인터내셔널, 넥스플랜, 동성사 등 여러 기업이 덕적고에 후원금을 쾌척했다. 지역 사회의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와 옹진군은 후원금으로 야구부원들이 야간에도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서포리 종합운동장과 학교 운동장에 조명과 펜스 등을 설치하고 있다. 장 감독은 "많은 분들께서 우리 야구부를 도와주고 있다. 우리는 성적으로 보답해야 한다. 덕적고를 3~4년 안에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도에서 육지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하루 세 차례 인천을 오가는 배뿐이다. 덕적고 선수들은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 온전히 야구에만 집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덕적도에 입성했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크다. 섬에서 야구 부원 전체가 함께 생활하다 보니 팀워크도 끈끈하다. 덕적고 주장 최민호(19)는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야구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덕적고에선 운동할 시간도 많고, 경험도 더 많이 쌓을 수 있어서 좋다. 덕적고로 전학을 온 뒤엔 야구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수 이겨레(18)는 "부원들과 함께 훈련하고 생활하다 보니 소통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똘똘 뭉치게 됐다. 단기간에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과 끈끈한 팀워크가 덕적고만의 강점이다"라고 힘줬다.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는 지난 5월 22일 서울 신월야구장에서 열린 열린 제76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2회전에서 경민IT고를 7-2로 꺾고 감격의 창단 첫 승을 올렸다. 야구부가 창단된 지 5개월 만에 쾌거를 이뤘다. 올해 목표였던 전국대회 16강 진출도 일궜다. 

여전히 서울·인천권역 최약체로 꼽히지만, 덕적고의 야구 소년들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약속한다. 최민호는 "저희가 준비했던 것들을 다 보여드리지 못했다. 우리가 잘해야 덕적고로 진학하려는 후배들이 생긴다. 동기부여도 되고 책임감을 느낀다. 섬마을 야구부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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