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게임 업계 관계자 "넷플릭스 몰아보는 건 왜 중독이 아닌가"
게임 중독 질병코드 국내 도입 여부 두고 갑론을박
비디오 게임. /EPA 연합뉴스
비디오 게임. /EPA 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호진 기자] "게임을 장시간 하면 중독자로 분류하는데,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몰아보는 건 중독이 아니라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게임이용 장애(게임 중독)' 질병코드 국내 도입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게임 중독을 마약, 알코올, 담배 중독처럼 질병으로 분류해 치료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과 중독의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고 게임 과몰입이 단순 게임 자체가 문제 요인이 될 수 있는지 타당성 조사가 필요하다는 두 진영이 충돌하고 있다.

WHO는 지난 2019년 5월 게임 중독을 질병코드로 등록한 '국제질병분류(ICD-11) 11차 개정안'을 발표했다. 당시 만장일치로 의결돼 '게임 중독=질병'이라는 공식이 현실화됐다. 올해부터 효력이 발생하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개정하는 오는 2025년까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등재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WHO가 의결한 ICD-11은 강제 사항이 아닌 권고 사항이다. 다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기관의 권고인 만큼, 국내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그대로 수용하느냐 국내 사정에 맞추느냐가 주요 관심사다.

민·관 협의체가 2020년 연구용역을 맡긴 게임 중독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에 관한 연구가 최근 완료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에는 게임 중독을 정신 질환으로 규정하기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1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이용자 패널·임상의학 코호트 연구 2개년 연구결과 발표'를 진행했다. 이날 조문석 한성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게임 중독은 대부분 1년 안에 사라진다"며 "일시적인 몰입이며 특정 콘텐츠, 취미 생활에 대한 몰입 경향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WHO가 정의한 연구 결과와 정면으로 맞선다.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보고서 표지.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보고서 표지.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 업계 한 관계자는 18일 본지와 통화에서 "조 교수님 팀의 연구 결과는 우리 업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독이 왜 게임에만 적용되는 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나온 건지 의문이다. 넷플릭스로 드라마나 영화 등을 몰아보는 현상은 왜 중독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과거의 부정적 인식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한 번 프레임이 씌이면 헤어나오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게임은 이제 스포츠, 문화, 공연 등을 포괄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제는 '게임은 나쁘다'라는 인식이 좀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만일 게임중독 코드가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인정된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단연 게임 업계다. 규모 축소는 2011년부터 시행돼 지난해 폐지된 '강제적 셧다운제'가 대표적이다. 당시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중독 예방을 목적으로 도입됐는데, 이로 인해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고 게임 산업이 쇠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인식의 악화다. 게임 이용과 제작·유통 등 일련의 행위 자체가 공중위생에 장애를 초래하거나 유사한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게다가 산업·경제 측면에선 사전적, 포괄적 금지 형태의 규제가 정당화될 여지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게임 산업은 지난 10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제는 국가적 사업으로까지 성장했다. 블록체인 기술, 메타버스 등과 연결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녔다. 현 정부는 일단 업계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박보균(68)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몰아가는 시선이 엄존한다"면서도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라고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이어 "세계 게임 시장 경쟁에서 필요한 인재를 키우고, 기획·제작·유통 전 과정을 문체부에서 지원하겠다"며 "규제를 선도적으로 혁신하고 풀겠다"고 덧붙였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의 게임과 현재의 게임은 엄연히 다르다. 과거의 인식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점만 짚을 게 아니라 긍정적인 부분도 함께 봐야 한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그리고 악(惡)하지 않다.

 

김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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