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고 장광호 감독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한국스포츠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장광호 감독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한국스포츠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도=한스경제 이정인 기자]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2시간여를 가면 '천혜의 섬' 덕적도가 나온다. 덕적도는 ‘큰물섬’이란 우리말을 한자화한 것이다. 수심 깊은 바다에 있는 섬이란 뜻이다. '섬사람들이 어질고 덕이 많다’고 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인구 1300여 명의 조용했던 이 섬에 최근 생기가 돌고 있다. 전국을 통틀어 단 하나뿐인 섬마을 고등학교 야구팀 덕적고 야구부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공식 창단한 덕적고 야구부는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학교를 구하고 지역 사회에 희망을 싹 틔웠다. 덕적도 주민들에게 야구는 '일반 공놀이'가 아닌 '희망의 상징'이다. 한국스포츠경제가 야구 인생 역전 홈런을 꿈꾸는 덕적고 야구소년들을 만나 봤다.<편집자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아직 기회는 많아. 넌 할 수 있어."

장광호(55) 덕적고 감독이 뙤약볕 아래 연신 방망이를 돌리는 제자를 다독였다. 인자한 미소로 선수들의 마음을 보듬는 그에게 '덕장'의 향기가 났다. 덕적고 주장 최민호(19)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지도자분들 중 가장 유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분이다. 기본을 안 지킬 땐 단호하지만, 제자들과 소통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신다"고 전했다. 주요한(18)은 "장 감독님은 선수들을 존중해주시는 지도자다. 항상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해주신다"고 말했다. 

덕적고 초대 사령탑인 장광호 감독은 인천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야구인이다. 인천-서림초-동산고-인하대를 나온 인천 토박이다. 프로 선수 생활도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등 인천을 연고로 했던 팀에서 했다. 은퇴 후에도 현대와 SK 배터리 코치를 역임하며 인천야구와 인연을 이어갔다. 

신생팀 덕적고가 짧은 시간에 선수단 구색을 갖춘 데도 장 감독의 공이 컸다. 섬 지역 학교여서 선수 수급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인천야구 사정에 정통한 장 감독이 직접 선수들을 찾아 나선 덕분에 원활하게 선수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전 인천을 정말 좋아한다"며 웃은 장 감독은 "우리 팀 선수 95%가 인천 출신이다. 지난해 덕적고 창단이 확정된 뒤 코치 2명과 함께 같이 뛸 선수들을 찾아 나섰다. 인천 고교 감독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선수들을 스카우트했다. 덕적고에 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예상보다 빨리 선수단 구성을 마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훈련내용을 전달받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훈련내용을 전달받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인천은 이 땅에 야구가 처음 들어온 곳이다. 구도(求道)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지난해 덕적고가 창단하기 전까지 인천 지역 고교 팀은 3개(인천고ㆍ동산고ㆍ제물포고)에 불과했다. 덕적고는 제물포고(1982년 창단) 이후 약 40년 만에 생긴 인천 고교 야구팀이다. 인천 지역에 야구부가 있는 학교가 적은 탓에 야구 꿈나무들이 다른 지역을 헤매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장 감독은 선뜻 덕적고의 지휘봉을 잡았다. "인천에 6개 중학교가 있는데 고등학교는 3개 밖에 없다 보니 선수들을 다 흡수하지 못했다. 선수들이 원치 않게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덕적고 야구부 창단 취지가 좋았다. 폐교 위기도 막을 수 있고, 인천 지역 야구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인천 지역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단기간에 팀을 안정적으로 만들 자신도 있었다. 인천 아이들이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감독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학부모의 심정도 잘 안다. 그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인의 길을 걷고 있다. 장남 장호석(31)은 대학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현재는 프로야구 2군 심판으로 일하고 있다. 차남 장승현(28)은 현역 프로 선수로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장 감독과 장승현은 KBO리그 역사상 첫 부자(父子) 포수로 잘 알려져 있다. 장 감독은 "자식 야구 시키는 부모의 마음을 잘 안다. 학부모들도 큰 결심을 하고 아이들을 덕적고로 보낸 것이다. 성적을 내기 위해 발버둥 치기보단 제자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할 수 있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이 6월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국민타자' 이승엽(46ㆍ현 해설위원)의 좌우명은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이다. 이승엽을 KBO리그 최고 타자로 만든 건 '성실함'이었다. 장 감독이 덕적고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도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다.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다.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자기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며 "프로 코치 시절 제자였던 유강남(30ㆍLG 트윈스), 김태군(33ㆍ삼성 라이온즈) 등도 부단한 노력 끝에 좋은 선수가 됐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 보통 선수밖에 안 된다. 우리 선수들이 단체 훈련 외에도 개인 운동 시간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고교야구 주말리그에 참가한 덕적고는 서울ㆍ인천권에서 전반기 무승 6패, 후반기 1승 5패로 최하위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 5월 제76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2회전에서 경민IT고를 7-2로 꺾고 감격의 창단 첫 승을 올리기도 했다. 야구부가 창단된 지 5개월 만에 이룬 쾌거다. 올해 목표였던 전국대회 16강 진출도 일궜다. 

장 감독은 내년 목표도 전국대회 16강 진출로 잡았다. 지금은 약체로 평가받지만, 장 감독은 선수들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믿는다. "올해는 운이 따라서 목표였던 전국대회 16강 진출을 이뤘다. 내년엔 진짜 실력으로 16강에 들고 8강 진출까지 노릴 것이다"라며 "제가 예상한 것보다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좋다. 올해는 선수들이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실전에서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경기를 거듭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엔 분명 더 좋아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많은 분이 우리 팀을 도와주고 응원해주시고 있다. 야구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꾸준히 성적을 내야 한다. 제 소임은 덕적고를 3~4년 안에 탄탄한 팀으로 만드는 것이다. 야구 꿈나무들이 오고 싶어 하는 덕적고를 만들고 싶다"고 힘줬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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