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공사는 이미 시작…임야 벌목 중
그러나 주민 반대·보상 문제 등 곳곳 암초, '착공식이 전환점' 기대 있었으나 무기 연기
지역사회 "착공식 통해 공사 속도 붙여달라" 주문도
정부·시행사 "세리머니에 불과, 기다려달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현장사무실이 자리잡은 옛 용인축구센터 부지. (사진=김현기 기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현장사무실이 자리잡은 옛 용인축구센터 부지. (사진=김현기 기자)

[용인=한스경제 김현기 기자] "착공식 기대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공사 크게 시작하려나 했는데…"

27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사무소 앞 식당에서 만난 주인은 "그래서 착공식 한답니까"라고 되물었다. 코로나19 등으로 어렵게 꾸려온 식당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공사와 함께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착공식 연기와 함께 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는 "이젠 접어야 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개업했다는 인근 카페 주인은 "카페, 식당, 함바(현장식당)가 조금씩 들어설 것 같다. 몇 달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럽지만 견디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여의도 1.4배 규모(415만㎡)에 달하는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공사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기초공사가 27일 옛 용인축구센터 부지 인근 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김현기기자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기초공사가 27일 옛 용인축구센터 부지 인근 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진=김현기 기자)

SK하이닉스와 협력사 50곳이 들어서 한국 반도체 새 요람이 되는 것은 물론 용인시, 여주시, 안성시 등 인근 지역 경제를 살릴 견인차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부지 결정 3년 반이 다 되도록 밑그림만 그리는 중이다. 지난 14일 예정된 착공식까지 돌연 취소됐다.

그러다보니 용인에서 가장 농가적인 동네였던 원삼면 일대가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반도체클러스터 연합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회장을 맡고 있는 주민 한상영씨는 "30년 넘게 친환경 농법을 자랑 삼아 농사 짓던 동네였는데 이젠 적막한 곳이 되고 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22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내 경작금지 안내 현수막이 내걸렸다. 김현기기자
지난 22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내 경작금지 안내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진= 김현기 기자)

사실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 차례 현지 취재 결과 사업시행자인 용인일반산업단지가 지난 4월 25일 착공계를 용인시에 제출, 다음 날 승인받은 뒤 현재 부지 내 국공유지인 옛 용인축구센터 인근 임야에 약 5m 높이 펜스를 쳐 벌목 작업을 하고 있다. 부지 내 전력 공급을 위한 깊이 40m 짜리 지하 전력구 공사도 안성시에서부터 하고 있다.

다만 토지 및 지장물 보상이 아직도 진행 중이고, 보상에 수긍하지 않는 일부 주민들 반대가 극렬하다보니 공사 속도가 더디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인근 원삼면 면사무소 앞. (사진=김현기 기자)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인근 원삼면 면사무소 앞. (사진=김현기 기자)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특수목적법인(SPC) 용인일반산업단지가 약 1조8000억원 들여 부지를 조성한 뒤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들여 4개 반도체 생산 공장(Fab)을 만드는 식으로 이뤄진다. 산업단지 조성은 2025년까지, SK하이닉스 첫 공장은 2027년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선 보상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 용인일반산업단지는 토지와 지장물을 분리해서 보상하는데 토지의 경우는 약 75%에 대한 보상이 끝났다. 지난 5월 3일 경기도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재결(공익을 위해 국가 명령으로 특정물 권리나 소유권을 강제 징수한 뒤 국가 혹은 제3자 소유로 옮기는 처분)을 신청했다. 이르면 9월 말 수용재결이 확정될 전망이다. 반면 지장물 보상은 40∼50% 정도 진행돼 아직 수용재결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 22일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연합 비상대책위원회 현수막이 원삼면에 내걸렸다. (사진=김현기 기자)
지난 22일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연합 비상대책위원회 현수막이 원삼면에 내걸렸다. (사진=김현기 기자)
지난 27일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착공 축하 현수막이 원삼면에 내걸렸다. (사진=김현기 기자)
지난 27일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착공 축하 현수막이 원삼면에 내걸렸다. (사진=김현기 기자)

김진규 용인일반산업단지 이사는 "지금은 지장물 없는 곳에서만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면서 주민들과 합의하고, 또 보상 끝난 곳엔 시공을 병행한다. 수용재결이라는 법적 절차도 남아 있다"는 말로 공사 진척이 어느 시점에선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일각에선 부지 중 절반 이상이 산이라는 점을 들어 평지로 만들기 위한 어려움이 클 것으로도 본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대규모 발파 작업을 해야하는데 (지장물 내) 아직 사람이 사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직 보상을 거부하고 있는 부지 내 일부 주민은 여전히 논에 벼를 심어 경작 중이다.

27일 옛 용인축구센터 축구장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이 곳은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로 지정됐다. (사진=김현기 기자)
27일 옛 용인축구센터 축구장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이 곳은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로 지정됐다. (사진=김현기 기자)
27일 용인반도체클러스터 현장사무실이 위치한 옛 용인축구센터 인근 단층 건물에 부동산 사무실이 줄지어 들어섰다. 사무실들은 거의 대부분 텅 빈 상태다. (사진=김현기 기자)
27일 용인반도체클러스터 현장사무실이 위치한 옛 용인축구센터 인근 단층 건물에 부동산 사무실이 줄지어 들어섰다. 사무실들은 거의 대부분 텅 빈 상태다. (사진=김현기 기자)

상황이 이러니 일각에선 이렇게 뒤숭숭한 분위기를 타개할 전환점으로 윤석열 대통령 등 정·재계 고위인사들이 참석하는 착공식 개최를 꼽는다.

착공식을 통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공사를 본격 알리면 보상 등 각종 현안도 빠르게 풀릴 수 있고, 쓸쓸한 마을 분위기도 바뀔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지난 14일 예정됐던 착공식이 하염 없이 미뤄지면서 원삼면 주민, 상인 등 현지 관계자들은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보상에 반대하는 1000여개 현수막까지 더해져 원삼면 일대는 어수선하다.

반면 정부와 시행사 측은 이미 착공계 내고 공사를 시작한 상태여서 착공식은 단순한 ‘세리머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고위인사 350명이 옛 용인축구센터 야외 행사장에서 착공식을 해야하는데 폭우 등 날씨 변수가 큰 데다 보상 민원 등도 함께 고려해 연기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비대위가 공공주택지구전국연대 대책협의회(공전협)와 연대해 착공식 당일 현장에서의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기는 했었다.

산업자원부 측은 "단지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것 정도인데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진규 이사는 "무슨 문제가 있어 착공식 연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언제 다시 열릴 것이란 계획은 지금 없다. 상황을 다시 봐야 한다"고 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 착공식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 활기찬 산업 도시로 바뀌는 길 역시 멀고 험해 보인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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