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DB하이텍 시가총액 급증→모회사 DB, 지주사 전환 요건 충족
DB, 수천억 들여 DB하이텍 지분 추가매입해야 하나 여력 없어
DB하이텍, 비메로로 설계 담담 분사 계획 공개…시총 15% 급락
'자회사 가치하락으로 지주사 전환 이슈 벗어나나' 의심의 눈초리
DB하이텍 음성 공장
DB하이텍 음성 공장

[한스경제=김현기 기자] ESG시대, "국내 기업들은 G가 어렵다"는 평가가 종종 나오곤 합니다. 환경과 사회공헌에선 선진국 못지 않을 만큼 앞서가고 있지만 지배구조 개선에선 항상 골머리를 앓기 때문이죠. 오너가 위주 경영이 대세인 한국에선, 그래서 G를 잘해야 진정한 ESG 경영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들 상당수가 2세에서 3세, 혹은 3세에서 4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김현기의 GA(Governance Analysis)’는 이런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및 기업분할, 승계와 관련된 알쏭달쏭한 방정식을 함께 풀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지난 2년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인기에 힘입어 부쩍 성장한 기업이 하나 있습니다. 한때 DB그룹 애물단지였던 DB하이텍입니다.

DB하이텍은 연간 3000억원 적자를 내며 간신히 버티던 기업이었습니다. 오너인 김준기 전 회장이 차입금 상환을 위해 2009년 사재 3500억원을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순수 파운드리 회사라는 자부심과 뚝심이 수년 전부터 서서히 통했고, 지난 2019년 1813억원, 2020년 2393억원, 지난해 3991억원 등 수천억원대 영업이익을 내면서 백조로 거듭났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10대 파운드리 기업으로 올라섰습니다.

시장에서 DB하이텍을 보는 눈도 당연히 달라졌습니다. 지난 2019년 초 5000억원에 못 미치던 시가총액이 올 초엔 4조원에 육박한 것입니다.

다만 이런 호황이 DB그룹에 새로운 고민을 안겨준 것도 사실입니다. DB하이텍의 최대주주 DB(상장명은 DB Inc)가 지난해 말 기점으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전환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공정거래법은 특정 기업이 ①별도기준 대차대조표 내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 ②자회사 지분가액의 합계액이 자산총액 50%(지주비율) 이상 등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할 경우 지주사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주사는 자회사가 상장사일 경우 2년 안에 지분율 30% 이상을 기록해야 합니다. 지키지 않으면 큰 액수의 과징금을 물게 됩니다.

DB는 지난해 말 별도기준 자산총액 610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 DB가 갖고 있는 DB하이텍의 지분 장부가액이 4000억원을 약간 웃돌았습니다. 지주사 요건 두 개를 충족한 셈입니다. 이에 따라 DB는 현재 12.42%인 DB하이텍 지분을 2년 안에 최소 17.58% 더 매입, 30%를 채워야 합니다. 원래 의무지분율이 20%였으나 지난해 말 법 개정으로 10% 늘었습니다.

문제는 DB의 DB하이텍 지분율 30%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17.58%를 더 매입하려면 현 주가로 계산해도 수천억원의 현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올 1분기 기준 DB가 갖고 있는 현금은 100억원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부터 시장은 DB가 지주사 전환 문제 해결을 위해 DB하이텍을 큰 기업에 매각하지 않을까 예측했습니다. DB그룹은 DB손해보험 중심의 금융 전문 집단으로 전문화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DB그룹은 DB하이텍 매각 의사가 없다고 강조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매각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최근 DB하이텍이 발표한 기업 분할 계획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DB하이텍은 파운드리와 함께 꾸리고 있는 비메모리 설계(팹리스) 담당 ‘브랜드 사업부’의 분사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아직 매출 비중은 20% 정도로 크지 않지만 장래성이 충분한 브랜드 사업부를 독립시켜 투자금도 유치하고 전문성을 키운다는 게 DB하이텍의 구상입니다.

그러나 DB하이텍의 야심찬 계획 이면을 들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DB의 지주사 이슈 때문입니다. 분할 발표에 시장이 반응해 DB하이텍 기업가치가 떨어지면→DB가 갖고 있는 DB하이텍 장부가치가 떨어져→DB의 별도기준 자산총액이 5000억원 아래로 내려가지 않겠느냐는 계산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DB는 자산총액 기준 미달로 유예기간인 2024년 1월 1일까지 지주사 전환 이슈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합니다. 실제로 분할안이 공개된 지난달 12일 DB하이텍 시가총액은 3300억원(15.70%) 추락했습니다. DB가 갖고 있는 장부가치도 400억원가량 빠진 셈입니다. 한 번의 발표로 효과가 톡톡히 드러났습니다.

이후 시장은 충격을 만회, 최근 시총은 2조원(주당 4만5000원)에 다가서는 등 분할 발표 전 가치에 다가서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DB하이텍이 분할 방식 등 세부사항을 놓고 추가 발표를 예고하는 등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 지난해 말 기록했던 3조2280억원(주당 7만2700원)까지 회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증권가에선 "(DB하이텍이 분할 관련) 추가 발표 여지를 남겨놓은 것은 기업가치 상승 여력을 막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DB하이텍 본업의 장래성만 보고 투자한 일반 주주들 피해도 나올 수 있습니다.

잘 나가던 기업이 오너가 지배구조에 얽매여 예측불허 상황으로 몰리는 것 아닌지 시장과 주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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