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공황장애 진단 받은 여자농구 1인자 박지수
정상급 프로골퍼 전인지 역시 과거 우울증 고백
국가대표 감독들도 극심한 성적 스트레스
일정 수준의 제도적 지원 방안 필요
청주 KB국민은행 스타즈 박지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WKBL 제공
청주 KB국민은행 스타즈 박지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WKBL 제공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스포츠 기사를 작성하면서 경험하는 난제 중 하나는 2등을 한 선수를 어떻게 적절히 표현하느냐다. 1등을 한 선수의 이야기는 신문 지면에 대서특필되지만, 2등을 한 선수의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갈지 다소 애매하다. ‘아쉽다’란 표현은 이미 클리셰가 돼 버린 지 오래인 탓에 어떻게 의미를 담아 기사로 풀지 적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스포츠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1등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2등을 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찝찝한 뒷맛이 있다. 사실 2등은 승자보단 ‘패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우승이란 단어 앞에 ‘준(準)’이 붙으며, 우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을 모두 이겼다는 평가보단 우승자에게 패했다는 의미가 강조되곤 한다.

승부욕이 남다른 스포츠 선수들은 2등을 싫어한다.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 스타들을 인터뷰해보면 ‘우승’, ‘4강’, ‘톱10’을 목표로 한다는 선수는 있어도 ‘준우승’을 목표로 하는 선수는 없다. 물론 그러한 승부욕과 노력이 결국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1995년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슬로건의 시리즈 광고를 진행한 삼성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처럼 최고를 향한 동기부여와 노력은 평가절하할 수 없다.

다만 ‘최고’에 대한 압박감이 지나치면 스스로를 옥죄게 된다. 최근 들려온 여자프로농구 박지수(24·청주 KB)의 공황장애 진단 소식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1일 "박지수가 최근 과호흡 증세 발현으로 정밀 검사를 실시해 공황장애 초기라는 진단 결과를 받았다. 모든 훈련을 중단하고 열흘 이상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단과 농구계에선 극심했던 성적 스트레스가 곪아 터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인왕과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3회를 받으며 여자프로농구계 적수가 없었던 선수도 남몰래 심한 성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전인지가 미소를 짓고 있다. /LPGA 페이스북
전인지가 미소를 짓고 있다. /LPGA 페이스북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를 평정하고 201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진출한 전인지(28)는 2018년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2년 1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한 후 그동안 우울증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한참 슬럼프를 겪던 시기에 한 취재원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먼저 확인했던 적이 있다. 더 많은 악성댓글과 좋지 않은 여론이 예상돼 기사를 쓰진 않았지만 최정상급 선수의 고충을 눈으로, 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선수뿐 만이 아니다. 국가대표 감독이나 명문팀 감독도 무거운 책임감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자리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거스 히딩크(76) 감독이 선임된 2001년부터 현재 파울루 벤투(53) 감독까지 21년간 지휘봉을 잡은 사람만 무려 14명에 이른다. 2019년 성남 자택에서 만난 신태용(52) 전 축구 대표팀 감독은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악성댓글들이 올라와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됐다”고 고백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팀을 이끌며 온갖 악성댓글에 시달렸던 그는 “대표팀이 심리치료 전문가를 고용해 선수단을 보호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신태용 감독이 본지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스포츠경제DB
신태용 감독이 본지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스포츠경제DB

어느 분야든 정상에 오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자리를 유지하는 건 더 힘들다는 얘기가 있다. 기록을 다투는 스포츠의 특성상 선수들이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선수가 속한 구단과 리그, 대표팀 등에선 적어도 그 압박감의 무게를 덜어줄 지원책을 찾아야 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박종민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