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4대 그룹 더 커진 경제적 위상...무게감 실리는 정책금융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올해 들어 은행권의 기업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최근 2년 사이에 대기업 대출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대기업 쏠림이 불안정한 내외 경기 상황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의 유동성 문제로 불거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7월 말 기준, 은행권의 여수신동향 자료에 따르면 시중 주요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681조 6743억원으로,지난해 말에 비해 46조원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대기업 대출은 94조 6363억원으로 지난해 연말과 비교해 12조 2271억원이 증가했다. 

물론 은행권 기업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대출이다. 7월 말 기준으로 587조 379억원에 달하며 지난해 연말부터 증가한 기업대출 중 73%가 중소기업대출이었다.

기업대출 전반의 증가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대내외적 요인들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입장에선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여의치 않자 은행 대출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유동성 확보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온도차가 크다. 대기업의 경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나 M&A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이 늘고 있다. 또한 올해 들어서는 수출이 활기를 띄며 대금 지급 등의 수요가 늘었던 이유도 있다. 그에 반해 중소기업의 대출 수요는 기업운영과 직결돼 있는 경우가 많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는 대기업 집중돼 있다. 한국CXO연구소(소장 오일선)가 2011년부터 2020년 사이 국내 전체 법인 대비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의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매출액은 20%,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30~4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3286조원이었던 국내 전체 법인의 매출 규모가 2018년에는 4151조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4000조원의 벽을 뚫었다. 이 가운데 4대 그룹의 매출 규모는 2011년 684조원에서 2018년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었다. 반면 10년 동안의 평균 매출 규모는 746조원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의 비중은 더욱 높다. 10년 사이 전체 법인의 평균 영업이익은 177조원이었다. 이에 비해 4대 그룹은 53조 7000억원이었다. 대략 30.4% 수준이다. 특히 2019년에는 4대 그룹의 영업이익이 91조원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당기순이익도 같은 시기 국내 전체 법인이 평균 116조 2000억원이는데 반해 4대 그룹은 47조원으로 40.5% 수준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오일선 소장은 "대한민국 경제에서 4대 그룹이 차지하는 위상은 수치로 명확히 보여진다"며 "경제가 지금보다 더 도약하려면 4대 그룹과 기업을 더 육성하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여타 기업들의 이익이 이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은행업이 지닌 공공재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은행은 민간기업이므로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비중 확대를 두고 비판할 순 없다. 또한 우리나라 경제에서 4대 그룹을 포함한 대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이 클 수밖에 없다.

은행의 입장에선 코로나발 유동성이 회수되는 시점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지속되고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는 가운데, 과거에 비해 대기업 대출을 확대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그에 반해 중소기업대출은 상대적으로 고위험-고수익 대출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지금은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대출자산을 감안할 때며 건전성 관리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때인 것이다. 이에 시중 주요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을 늘리고 중소기업대출은 우량 담보물 위주의 보수적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 유동성 관리는 은행권에 일임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정책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표적인 강소기업 국가로 잘 알려진 독일의 경우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높아진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후폭풍을 중소기업이 제일 먼저 두드려맞고 있다. 

독일재건은행(KFW)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20%가 이미 에너지와 원자재 상승으로 인한 부담을 전적으로 가격상승을 통해 버티고 있다. 최근 몇개월 사이 에너지 가격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전년도에 비해 평균 41%씩 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을 비롯한 대외적인 이슈를 직접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볼 때, 단기적인 경제손실은 불가피한 상황이므로 미래 대비가 필요하다. 코트라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기업들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동참해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장기적 관점에서 원자재나 에너지 등의 산업 의존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KDB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과 같이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정책금융기관이 있다. 그러나 정권 교체시기와 맞물리며 이들 기관들의 사정은 심상찮다.

특히 지방이전 문제로 전 구성원이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산업은행의 경우가 그렇다. 산업과 기업의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추진, 중견기업 육성, 4차 산업혁명 지원을 비롯한 혁신성장 선도 등, 중차대한 역할을 도맡은 기관임에도 실효성이 의심되는 이슈에 전 조직이 흔들리고 있다.

대선 이후 3~4개월 후에야 자리에 앉게 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나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의 사례는 물론, 중차대한 시기에 금융당국 수장의 임명도 지지부진 늘어진 점을 보면 국정 차원애서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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