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영화 ‘헌트’가 인기 행진 중이다. 지난 10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7일 만에 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수성했다. 배우 이정재는 감독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연출과 주연을 도맡았다. 수년 동안 공을 들인 ‘헌트’는 ‘웰메이드’ 첩보액션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정재는 “처음에는 제작하고 싶어 ‘남산’(원작 시나리오) 판권을 샀다”라며 “ 많은 감독이 고사해서 결국 내가 연출을 맡게 됐다. 이 이야기의 강력한 끌림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출연과 제작만 관여하다 연출까지 맡게 됐는데. 
“많은 감독이 고사해왔는데 ‘시도는 해볼 만한 프로젝트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얼마나 만족도가 있는 영화로 만들어질지는 시작 단계에서는 가늠할 수 없었다. 계속 감독을 찾다가 나라도 ‘이제 이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쓰다 보니 수정고가 완성됐고 완성본까지 나왔다. 길고 긴 과정 동안 무려 7개의 작품을 촬영했더라. (웃음) ‘내가 왜 이걸 집착하며 쓰고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헌트’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근현대사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여기에 첩보극이라는 장르를 더했는데.
“스파이 장르물이라는 특색을 살리려고 하다 보니 직조된 치밀함을 시나리오에 녹이기 매우 어려웠다. 자료조사를 하는 데도 시간이 참 많이 걸렸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자료는 아닐지, 팩트 체크도 해야 했다. 또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아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수많은 검열을 거쳤다.”

-김정도 역을 맡은 정우성과는 ‘청담부부’라고 불릴 정도로 남다른 우정을 자랑한다. 출연 제안을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 서운하지 않았나.
“정우성이 4년 동안 거절했지만 그건 작품이 싫어서라고 볼 수 없다. 스케줄도 안 맞을 수 있고, 캐릭터가 지금의 나와 맞지 않는다던가, 캐릭터나 이야기가 본인과 맞지 않는 일도 있다.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 굳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친한 관계이지만, 일에 한해서는 얼마만큼 치열하고, 깊이 고민하는지 의논해서 결정한다. 마지막은 정우성이 ‘이번에는 시나리오가 좀 잘 정리된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의 관계와 감정 변화가 돋보인다. 초반에는 대립 관계였다가 중후반부터 동질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안기부에 남아있어야 하는 인물들이다. 서로의 목적을 알게 된 상황부터 ‘너와 내가 태생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지만, 목적은 같구나’라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하지만 끝내 두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작은 희망이 보일 수 있는 걸로 마무리를 짓는다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이루지 못한 걸 다음 세대에서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으면 했다.”

-연출도 연기도 다 해냈는데 돌아보면 어떤가.
“뿌듯함보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작업이구나 싶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모든 걸 다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는 성격이다 보니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연기와 연출을 다 하다 보니 체력이 매우 부족했다.”

-감독으로서 ‘배우 이정재’에 대한 만족도는.
“그냥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 감독을 해보니 개인적으로 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여러 상황에서 영향을 많이 받지 않나. 상대 연기자의 호흡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내가 생각한 연기와 다른 연기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참 많다. 연출은 연출대로 어렵다. 수많은 선택과 준비 과정의 연속이다.”

-‘오징어 게임’이 미국 최고 권위 TV 시상식인 에미 시상식에서 13개 부문 14차례 후보에 올랐다.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내게 벌어진 거다. ‘오징어 게임’이 해외에서 이렇게 성공할 줄은 정말 누구도 몰랐다. 황동혁 감독님은 미국에서 성공하고 싶어서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외국 사람들이 즐겨볼 수 있는 무엇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연기자로서는 좀 달랐다. ‘한국어로 연기를 하는데 그 메시지가 해외에 전달될까?’라는 고민이 많이 있었는데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었다. 시나리오와 연출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발전을 느꼈다. 나와 동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게 놀라운 기쁨이다. 

-감독으로서 차기작을 만날 수 있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없다고 말한다. 자꾸 말하게 되는데, 너무 힘들었다. 행여 이 영화가 대박이 난다 해도, 힘들었던 기억이 현재는 머릿속에 차 있다. 하지만 또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그래서 그 시나리오가 완성도 있게 나온다면 연출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