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성능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완성도 높은 디젤 스포츠세단
사진=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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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김정우 기자] 1990년대 프랑스 상업영화로는 드물게 국내에서도 적잖은 인기를 누렸던 뤽베송 감독의 ‘택시’라는 작품이 있다. 영화 줄거리는 몰라도 주연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시내를 질주하는 푸조 406 차량의 자태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영화 '택시' 시리즈에서 다양한 국적의 고성능 차량들을 제치고 독보적인 주행 능력을 보여주던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푸조 모델 대부분의 제원표상 성능 수치는 인상적이지 않다. 시승차량인 508도 최고출력 131마력, 최대토크 30.61kg·m의 1.5리터 디젤 엔진을 8단 자동변속기와 물린 앞바퀴굴림 방식 4도어 세단이다. 매끈한 외관 디자인과 리터당 17.2km에 달하는 복합연비를 빼면 시판 중인 타 브랜드 패밀리 세단들보다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508은 푸조 만의 디자인 코드와 진중한 운전 경험으로 대체 불가한 매력을 선사한다.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푸조의 스포츠 드라이빙 철학이 영화 '택시'의 주인공으로 괜히 푸조가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사진=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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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508의 매끈한 외관은 단아하면서도 개성이 넘친다. 8년 만의 완전변경을 통해 기존 정통 세단 이미지를 벗고 쿠페 스타일의 5도어 패스트백으로 파격적인 변화를 꾀했다. 이전 모델 대비 35mm 이상 낮아진 전고와 30mm 넓어진 전폭으로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스포티한 프레임리스 도어를 적용했다. 보닛, 도어 프레임 등의 겹치는 부분과 틈새를 최소화 했으며 후면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디자인을 적용해 전체적으로 공기역학적이고 미려한 디자인을 빚어냈다.

전면부는 콘셉트카 ‘인스팅트’에서 영감을 얻은 사자의 송곳니 형상 LED 주간주행등(DRL)을 헤드램프에서 공기 흡입구까지 수직으로 잇고 입체적인 크롬 패턴의 그릴을 심어 독특한 인상을 완성했다. 보닛 중앙에는 푸조 플래그십 세단의 시작인 504의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의미를 담아 508 엠블럼을 배치했다.

후면부는 블랙 패널에 사자의 발톱을 형상화한 3D 풀 LED 리어 램프를 적용했으며 시간차를 두고 점멸하는 시퀀스 턴 시그널과 차를 열 때 리어램프가 다양한 형태로 점멸하는 웰컴 시퀀스 기능을 더했다. 

사진=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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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에 앉으면 비범한 콕핏 형태의 구성이 운전에 진심인 푸조의 성격을 드러낸다. 위·아래가 평평하게 처리된 더블 플랫 스티어링휠은 역동적인 조향에 적합하게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마련돼 있고 납작한 형태의 디지털 계기판이 뒤쪽에 자리한다. 계기판은 다른 차량들과 달리 스티어링휠 위쪽으로만 볼 수 있고 대시보드 위쪽으로 크게 불거져 나오지도 않아 운전자의 전방 시야각과 직관적인 주행 정보 제공을 동시에 만족한다.

스티어링휠 외에도 모든 실내 구성 요소가 운전자 중심 인체공학적으로 배치돼 있다. 센터콘솔이 높게 경사져 올라와 시동 버튼과 기어셀렉터 레버 등으로 쉽게 손을 가져갈 수 있으면서 센터콘솔 암레스트에 팔이 걸리지 않는 점 등이 인상적이다. 센터 디스플레이 패널은 운전석 쪽으로 살짝 기울여져 있으며 모든 조작부가 헐겁거나 지나치게 빡빡한 느낌 없이 적절한 조작감을 제공한다.

대시보드는 우레탄 소재의 원피스 형태로 제작해 시원한 공간감을 연출했으며 대시보드 하단과 도어 트림에는 고급스러운 블랙 우드 소재를 덧댔다. 센터에 마련된 8인치 터치스크린으로 각종 인포테인먼트를 조작할 수 있고 아래로 7개의 토글 스위치가 전화, 라디오, 공조장치 등의 직관적 조작 환경을 제공한다. 디지털 인포테인먼트 메뉴 구성은 아직 다소 허전하고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

시승차의 GT팩 사양인 아이-콕핏 앰플리파이는 헤드업 인스트루먼트 패널 테마와 터치스크린의 밝기·색상, 엠비언트 라이트 밝기, 오디오 이퀄라이저 설정, 시트 포지션 조절 기능 등을 제공하며 에코, 노멀, 스포츠 세 가지 드라이빙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밖에 10개 스피커를 포함하는 포칼(FOCAL)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으로 고품질 음향을 제공한다.

스티어링휠은 적당한 크기일 뿐 아니라 운전에 자신감을 더할 수 있는 안정적 조향 능력을 제공한다.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차량의 자세를 유지해야 할 때는 정확하고 묵직하게 잡아준다. 

508 대시보드의 포칼 사운드시스템 스피커. /사진=김정우 기자
508 대시보드의 포칼 사운드시스템 스피커. /사진=김정우 기자

운전을 시작하면 저배기량 디젤엔진인 만큼 발끝이 다소 가볍게 느껴지지만 1750rpm의 낮은 회전수에서 최대토크가 나오는 만큼 금새 심심함을 지울 수 있다. 디젤엔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반응성과 부드러운 엔진 질감이 예상 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차량 외부에서는 디젤엔진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만 차내에서 주행 중 들리는 엔진음은 부드러울 뿐 아니라 가솔린 스포츠카 느낌마저 준다.

엔진 회전수를 높이면 최적의 가속감을 느낄 수 있는 변속 로직이 뒤를 받쳐준다. 엔진 회전수가 제한적인 디젤 터보엔진이면서도 부드러운 회전 질감과 변속기의 부지런함으로 매끄럽고 부족함 없는 가속 능력을 보여준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기어 단수를 내려주는 다운시프팅도 모범적인 스포츠 드라이빙 능력이다.

수치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같은 508의 운전 경험은 디젤엔진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다. 연비 효율 외에 반응성 등에서 가솔린엔진에 비해 열위에 있다는 인식을 한 번에 날려버리고 푸조가 ‘디젤엔진의 명가’라는 점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거의 완벽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갈고 닦은 디젤 파워트레인의 매력은 완전 수동 변속 모드로 오롯이 느껴볼 수 있으며 스포티한 외관 디자인부터 운전자 중심의 콕핏까지 일관되게 이 차의 성격을 표현한다.

또 앞 215mm 뒤 235mm 폭의 타이어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중고속 영역까지 전혀 불안함을 느끼기 어려운 주행 안정성과 정숙성이 감탄을 자아낸다.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시원한 가속감에 답답함을 느낄 수 없다. 수준급의 스티어링과 서스펜션, 브레이크 하체 세팅이 어우러진 결과다. 저속 주행에서는 불쾌한 노면 요철 진동을 거의 다 걸러내 실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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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유럽 신차 안전도 평가기관 유로NCAP 최고 안전 등급을 획득한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도 전 트림에 기본 적용했으며 제한속도 인식 및 권장 속도 표시 기능, 운전자 주의 경고 기능 등을 포함한다. 자동 주차 보조 기능도 지원되지만 협소한 주차 환경에서는 어지간한 운전자의 주차 실력에 미치지 못해 그다지 실용성을 느끼긴 어렵다.

자동 개폐가 가능한 테일게이트를 열면 널찍한 화물 적재공간이 나타나고 큰 불만이 나오지 않는 후석 공간도 제공한다. 앞좌석 시트는 장거리 운전시 도움이 되는 안마 기능까지 탑재돼 푸조 브랜드에서 고급 세단에 위치한다는 점도 드러낸다.

508의 디젤 시스템은 환경부로 WLTP(국제표준시험방식) 인증을 승인 받았다. SCR(선택적 환원 촉매 시스템), DPF(디젤 입자 필터)로 질소산화물 배출을 90%까지 줄이고 미세한 입자 제거율을 99.9%까지 높였다는 설명이다. 일상 영역에서는 물론 고속주행 시에도 우수한 연비 효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디젤 엔진이 외면받기 시작한 최근의 분위기 속에서도 시장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508은 제원상 일반적인 패밀리 세단의 범주에 있지만 실제 운행 경험에서는 완전히 운전자 중심의 스포츠 세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차량이다. 수치적 성능표가 차량 선택의 절대적 기준인 소비자들에게는 외면받기 쉽지만 실제 운전 경험이나 디자인 독창성 등에서 가치를 찾는 소비자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푸조 508의 국내 판매 가격은 트림별로 알뤼르 4590만원, GT 4990만원, GT팩 5390만원이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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