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물적분할 금기어 시대에 풍산 물적분할 발표
방위사업 강화 위해 풍산디펜스 설립…비상장 약속
고금리 시대 투자 어떻게 유치하나 논란 분분
류진 회장 미국 네트워크 주목하는 시선도
풍산 CI. /풍산 제공
풍산 CI. /풍산 제공

[한스경제=김현기 기자] ‘물적분할’이란 단어가 금기어가 되어가는 시대, 물적분할을 과감하게 발표한 기업이 있습니다.

1980년대 ‘풍∼산 동파이프’라는 TV CF로 시선을 모았던 구리업체 풍산이 주인공입니다.

풍산은 추석 연휴 직전 방산사업 물적분할을 결의했습니다. 오는 12월 방산사업을 전담하는 풍산디펜스(가칭)을 신설하는데 풍산이 지분 100%를 모두 소유하며 비상장을 유지한다는 내용입니다. "(분할을 통해)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시점으로 판단했다"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풍산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3조5095억원, 영업이익 3141억원, 당기순이익 243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액 중 구리 및 구리합금소재와 가공품을 판매하는 신동사업이 77%, 단약 등을 생산하는 방산사업이 23%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산사업 비중이 4분의 1가량인 셈인데,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갈수록 방산 비중이 커진다는 것에 있습니다.

풍산은 국내 군용탄을 거의 독점하는 수준의 점유율을 기록 중입니다. 이에 더해 최근엔 급격한 해외 수요 증가에 직면했습니다.

증권가에선 최근 풍산 기업가치를 두고 거의 방산만 반영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입니다. 경기 둔화로 구리 제품 수요는 줄어든 반면 고기능 탄약을 원하는 국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다보니 생긴 일입니다.

풍산도 이런 흐름에 편승해 방산 사업을 보다 전문화하고 투자 유치를 하기 위해 풍산디펜스를 설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시장은 풍산을 향해 ‘왜 물적분할’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분할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방산사업을 해나갈 수 있고, 인적분할이라는 방식을 통해 주주들이 풍산과 풍산디펜스 두 회사 주식을 모두 보유하는 방법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일반주주들이 싫어하고 △시장이 반대하며 △정부가 경고하는 ‘물적분할’이냐는 얘기입니다.

방산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등하던 주가가 물적분할 발표 전후로 10% 떨어진 것 역시 시장의 실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년간 물적분할을 단행한 대표적 기업으론 포스코와 세아베스틸이 꼽힙니다.

공교롭게 금속을 취급하는 회사라는 점에서 풍산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두 기업 모두 물적분할 뒤 자회사에 대한 비상장을 공표했다는 점도 풍산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포스코홀딩스, 세아베스틸지주 등 지주사 체제 전환, 즉 지배구조 업그레이드를 위해 물적분할을 택한 경우였습니다.

풍산은 지난 2008년 풍산홀딩스를 세워 지주사 체제를 구축했고, 이번 물적분할은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떼어 만든 것과 똑같은 물적분할이란 점이 포스코 및 세아베스틸과의 차이점입니다. 물적분할에 대한 정당성이 부족한 셈입니다.

풍산디펜스가 과연 상장 없이 버틸까란 의문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차입이나 회사채 등 부채를 늘려 투자 유치를 이뤄야하는데 고금리 시대에 얼마나 빚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전환우선주, 전환상환우선주 발행 우려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풍산은 추석 연휴가 끝나는 첫 날인 13일 기업설명회(IR)를 통해 물적분할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 및 비전 제시를 진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왜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는지를 알릴 방침입니다. IR 뒤 물적분할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변할지 궁금합니다.

풍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연결기준 자산이 3조5381억원으로, 재계서열 80∼90위권입니다.

하지만 류진 풍산 회장은 미국 정계인사들과 오랜 친분이 있어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건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풍산디펜스 설립 구상도 그런 미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 및 한미 관계 인식을 통해 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습니다.

"풍산이라 쓰고 풍비박산이라 읽는다"는 주주들의 푸념이 미소로 바뀔지 지켜볼 일입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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