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두산,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팔아 5727억 확보
자사주도 18.15% 갖고 있어 이를 어떻게 할지도 관건
블록딜 vs 당분간 보유 vs 소각 재개…시나리오 다양
서울 중구 두산타워. /연합뉴스
서울 중구 두산타워. /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현기 기자] 두산그룹 지주사 ㈜두산이 지난달 말 자회사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지분을 대거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로 처분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약 4.47%를 매도해 5727억원가량을 챙겼습니다. 지분율은 공정거래법상 지주사가 소유해야하는 30%에 근접한 30.50%였습니다.

결국 자금 확보를 위해 지주사가 알짜 자회사 지분을 ‘영끌’해서 팔아치웠다고 봐도 무방한 셈입니다.

㈜두산은 지난해 말 별도기준 현금성자산이 5836억원이었으나 지난 6월 말 2856억원으로 반년 만에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 별도기준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도 76.76%에 그쳐 괜찮은 수준으로 간주되는 200%하고는 차이가 큽니다.

그러다보니 원전과 친환경 테마를 동시에 보유해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을 내다판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두산그룹은 경기 쇠퇴, 금리 인상을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로봇 등 신사업에 박차를 가하다보니 자금 확보를 선제적으로 이뤄야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두산그룹은 2년 전 만기가 한꺼번에 닥친 4조원 규모의 두산에너빌리티 회사채 상환이 어려워 극심한 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 그런 과거도 교훈이 됐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이번 블록빌로 인해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블록딜한 날 기점으로 보름 사이 20%가량 곤두박질쳤습니다.

또한 두산그룹은 2020년 9월과 지난 2월 각각 1조2000억원과 1조1500억원의 대규모 두산에너빌리티 유상증자를 실시해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는데 이번엔 ㈜두산 자금 수혈을 위해 블록딜까지 했으니 최근 몇년간 주주가치 환원과 거리가 먼 기업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두산 자사주에 시선을 돌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두산의 자사주 비중이 크다보니 두산그룹이 향후 이를 어떻게 활용할까 궁금하다는 뜻입니다. 시설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자사주 블록딜을 하는 기업이 종종 나타나기도 합니다.

㈜두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발행주식(보통주) 총수 1652만3835주 중 300만8666주를 자사주로 갖고 있어 비율이 18.16%에 이릅니다.

지난 2015년만 해도 600만주 가까이를 자사주로 두고 있어 비율이 28.10%에 달했으나 2016년 635억원, 2017년 615억원, 2018년 540억원 규모의 소각을 단행, 2019년부터 18.16%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사주 소각도 기업의 이익이 발생해야 가능합니다. 회사가 보유한 주식 가치가 소각으로 인해 줄어드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0년 그룹 해체 논란까지 부를 만큼 위기를 겪다보니 최근엔 자사주 소각할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두산 2020년 연결기준 당기순손실은 1조원에 육박했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일각에선 ㈜두산이 자금이 더 필요할 경우 ㈜두산 자사주도 매각 대상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제기합니다. 자회사 지분을 필요한 양만 빼면 다 정리해서입니다.

반면 ㈜두산 시가총액이 1조4000억원 안팎임을 들어 자사주 블록딜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분 5%를 팔아도 세금 빼면 손에 쥐는 액수가 1000억원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당분간은 자사주를 그냥 놔둘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르면 내년에 자사주 소각을 더하지 않을까하고 기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최근 로봇 및 수소 특수와 맞물려 ㈜두산이 지분 100%를 나란히 갖고 있는 두산로보틱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사업 전망이 좋아 ㈜두산 이익이 커지고 주가가 오르면 5년 만에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주가 상승에 따라 자사주 블록딜로 자금을 수혈할 수도 있는 등 시나리오는 다양합니다.

㈜두산의 자사주는 오너가 지배력 유지에도 기여를 했습니다. 오너가 27명이 지분율 총 38.65%를 기록한 가운데, 20%에 가까운 자사주 비율이 경영권 확립을 더 탄탄하게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지배구조 재편과도 관련이 있어 ㈜두산 자사주 향배가 더욱 궁금하게 됐습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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