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오지환. /LG 제공
LG 트윈스 오지환. /LG 제공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LG 트윈스 주전 유격수 오지환(32)의 별명은 '오지배'다. 경기를 지배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경기를 잘해서 지배할 때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 실책으로 경기를 망치는 일이 많았다. 과거 '오지배'라는 별명은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였다.

올해는 위상이 다르다. 호수비를 펼치고,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며 긍정적 의미의 '지배자'로 활약하고 있다. 20일 오전까지 12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5(442타수 117안타), 24홈런, 80타점, 69득점, 출루율 0.347, 장타율 0.475, OPS(출루율+장타율) 0.822를 기록 중이다. 홈런 3위, 타점 10위, 장타율 12위에 해당하는 수준급 성적을 올리고 있다. 19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그는 "시즌 전 장타를 많이 치겠다고 다짐했는데 스스로와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며 "올해는 타석에서 느낌이 좋다. 타격에 대해 이제야 알아가는 느낌이다. 결과가 좋다 보니 타석에서 자신감도 생겼다"고 밝혔다.

오지환은 1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6회 볼넷으로 출루한 뒤 2루 도루에 성공해 시즌 20도루 고지에 올랐다. 데뷔 첫 20홈런-20도루를 달성했다. LG 소속 선수로는 송구홍(1992년), 김재현(1994년), 이병규(1999년)에 이어 4번째로 기록을 세웠다. 또 KBO리그 역대 유격수로서 네 번째 20-20 달성 선수가 됐다. 오지환에 앞서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유격수는 이종범(1996년, 1997년), 강정호(2012년), 김하성(2016년, 2020년) 3명뿐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유격수로는 오지환이 처음이다. 유격수 출신인 류지현(51) LG 감독은 "(오지환처럼) 장타력과 스피드를 같이 겸비한 선수는 많지 않다"라며 "경기 동안 움직임이 많은 유격수를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1년간 그렇게 하기 힘들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오지환은 올해 '클러치 히터' 면모도 보이고 있다. 득점권 타율이 0.321로 전체 12위, 팀 내 3위다. 득점권 타율이 주자 없을 때 타율(0.270)보다 높다. 경기 흐름을 가져오는 순도 높은 안타를 곧잘 때려낸다. 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의 자료를 보면, 승리확률 기여도를 측정하는 WPA(Win Probability Added) 2.50을 기록해 이 부문 전체 8위에 올라 있다.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스탯티즈 기준) 역시 4.96으로 전체 4위다. 결승타는 7개를 기록해 전체 공동 7위, 팀 내 2위를 달리고 있다. 류지현 감독은 "오지환은 슈퍼스타다. 중요한 경기에서, 많은 관중 앞에서 잘하는 게 진짜 스타다. 오지환이 이제 한 단계 올라선 것 같다"고 칭찬했다. 오지환은 "득점권, 접전 상황에서 나가거나 선두 타자로 나설 때 집중력이 배가 된다. 결정타가 필요한 상황에서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LG 트윈스 오지환. /LG 제공
LG 트윈스 오지환. /LG 제공

유격수의 제1덕목인 수비력 역시 리그 최장상급이다. 강한 어깨와 넓은 수비 범위를 뽐낸다. 화려하면서도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이고 있다. 수비율은 유격수 중 1위(0.972)고, WAA(수비기여도·스탯티즈 기준)는 1.132로 전체 3위, 유격수 2위를 마크하고 있다.

오지환의 또 다른 강점은 건강함이다. 그는 LG가 치른 126경기 중 125경기에 출전했다. 1045이닝을 소화해 리그 유격수 가운데 SSG 랜더스 박성한(10661.이닝)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수비 이닝을 소화 중이다. 다치지 않는 이상 끝까지 경기를 소화하는 스타일이다. 오지환은 "체력적인 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 있다. 솔직히 삼진 당하는 건 창피하지 않다. 하지만 힘들어서 쉰다는 건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고 전했다.

그는 '1990년생 황금세대'다. 오지환, 허경민, 정수빈(이상 두산), 안치홍(롯데 자이언츠), 김상수(삼성 라이온즈), 박건우(NC 다이노스) 등 1990년생들은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동기들이 20대에 일찍 두각을 나타낸 것과 달리 오지환은 30대 초반에 기량을 만개했다.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꾸준한 성적을 냈다. 예전에는 '난 왜 안될까' 자책을 많이 했다. 매년 꾸준히 경기에 나가면서 실패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이제는 확신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데뷔 후 첫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 최근 20-20을 달성해 박성한과 유격수 골든글러브 다툼에서 좀 더 우위를 점하게 됐다. 하지만 오지환의 우선 순위는 황금장갑이 아닌 LG의 우승이다. "골든글러브는 모든 선수의 꿈이지만, 제가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예전에 같이 뛰었던 정성훈(은퇴) 선배가 '난 2000안타를 쳤지만 골든글러브를 한번도 받지 못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꼭 골든글러브 수상이라는 영광을 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팀에 도움되는 플레이를 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힘줬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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