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올해(11월 9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태어 난지 144년 되는 해다. 도산은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머리와 입이 아닌 행동으로 본을 보였다. 말과 행동이 겉돌지 않았다. 숱한 애국지사 가운데 유독 도산의 말에 무게가 실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남 한복판에 도산을 기린 ‘도산공원’이 있다. 번잡한 주변 분위기와 달리 고즈넉하다. 도산공원은 삭막한 청담동과 논현동 일대에서 흔치않은 녹지공간이다.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학생과 외국인 여행자까지 많은 이들은 이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사색에 잠긴다.

주말, 도산공원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도산의 말씀을 되새겼다. 우리 정치 상황과 겹쳤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誠實)을 잃었거든 통회(痛悔)하라.” 안병욱은 도산 사상을 소개하는 글에서 ‘도산이 가장 미워한 것은 거짓이요,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은 진실’이라고 했다. 도산은 거짓은 협잡을 낳고 협잡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불행을 낳는다고 했다. 거짓말을 경계하는 신념은 결벽에 가까웠다. 오죽했으면 꿈에라도 거짓말을 했거든 뉘우치라고 했을까 싶다. 우리 정치는 진실한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반년을 넘겼다. 출범 6개월 만에 정권교체와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빛바랬다.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는 ‘내로남불’과 불통, 정쟁이 반복되고 있다. 각박한 여야 대치는 상대를 공존이 아닌 절멸로 몰아가고 있다. 여당은 전 정권 흠을 들추는데 급급하고, 야당은 사사건건 현 정부 발목을 잡고 있다. 진영정치와 거짓정치 또한 일상화됐다. 이 와중에 국민과 민생은 보이지 않는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파적 이해에 매몰된 정치 현실이다.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논란 이후 국민의힘은 이제껏 속 시원한 사과나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언론에 책임을 전가하며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국민들 눈에는 빤한 거짓말인데 당당하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다를 게 없다. 이재명 당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야당 탄압과 정치 탄압으로 물 타기하고 있다. 이 대표 측근에게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간 진술과 정황은 흥건하건만 애써 부정하고 있다. 이쯤 되면 집단최면에 빠진 것과 다르지 않다. 여야 모두 ‘꿈에라도 거짓을 했다면 뉘우치라’는 말씀 앞에 당당한지 묻고 싶다.

상대를 배척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도산은 “내게 한 옳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옳음이 있다. 남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 해도 그를 미워하는 편협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잘못할 수 있는 동시에 남도 옳을 수 있다. 우리는 비록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 정치에서는 완전한 악(惡)도 완전한 선(善)도 없다. 같은 뜻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정권을 쟁취하는 게 정치의 본질인데 상대를 일방적으로 악마화 하는 건 독단이자 독선이다.

관용과 절제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레비츠키 교수는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절제가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해 왔다고 했다. 다시 말해 서로를 인정하고, 자신들에게 시한부로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함부로 사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유지된다. 우리 정치는 관용과 이해 대신 증오와 배척을 일삼고, 집권하면 권력기관을 동원해 제도적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 도산과 레비츠키는 민주주의 작동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도산은 “서로 사랑하면 살고, 서로 싸우면 죽는다”고 했다. 조개와 도요새가 싸우다 어부에게 잡혀갔듯(어부지리) 내부 갈등과 증오가 망국을 불렀다는 인식이다. 세계 경제위기와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여야 정쟁으로 인한 결과는 빤하다.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오렌지를 딸 때 도산은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게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고 정성을 다하라고 했다. 본분을 다하고 권한과 권력을 신중하게 행사할 때 성숙한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됐던(1938년) 도산의 유해는 1973년 11월 박정희 정부에 의해 지금 자리로 이장됐다. 박정희는 강남에 1만평 가까운 묘역을 조성하고 기념관을 설치했다. 비슷한 사례로 전두환 정권에서 건립한 서초동 예술의전당을 들 수 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전두환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진보정권은 두 사람을 악인으로 공격한다.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우리는 도산공원과 예술의전당을 만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어느 정권이든 공과는 섞여 있다. 한 면만 비판하기보다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허물은 허물대로 묻는 게 합당하다. 극심한 정쟁은 국민을 피폐하게 한다. “내게 한 옳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옳음이 있다”는 진리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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