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참사 4시간 전부터 ‘보행관리’ 요청신고 11건…경찰 출동은 4차례 불과
중대본 회의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이태원 사고 사망자’로 통일 지침
한 총리, 외신기자 브리핑서 “통역 안들리는 책임 누구?” 말장난에 웃음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모습. / 박수연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모습. / 박수연 기자

[한스경제=박수연 기자] 경찰청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 112 신고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책임을 축소‧회피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전인 오후 6시 34분부터 ‘압사 당할 것 같다’는 신고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첫 신고자는 참사가 일어난 해당 골목의 위치와 당시 상황, 일방통행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후 △저녁 8시 9분 △8시 33분 △8시 53분 △저녁 9시 △9시 2분 △9시 7분 △9시 10분 △9시 51분 △저녁 10시 △10시 11분 등 총 11건의 신고 전화가 왔다. 저녁 8시 33분에 경찰서에 전화를 건 신고자는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지고 지금 이거 사고날 것 같다”고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11건의 신고 전화 중 ‘압사’라는 단어만 13번 등장했지만 경찰 출동은 4차례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전화 상담을 통해 사건을 종결했다. 출동 후 경찰의 대응도 미흡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관은 2명씩 출동했으며 현장 일대를 둘러보는 정도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주변에 경찰력이 있고 다른 현장도 둘러봐야해 한 곳에만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상주하며 보행 및 안전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의 미흡한 현장대응으로 벌어진 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대응은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서울 용산경찰서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에 맡겨진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 ‘읍참마속’의 각오로 임하겠다”며 “전반적인 현장 대응 적정성과 각급 지휘관과 근무자 조치 적절성을 조사하겠다”고 설명했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고 표기하라

경찰이 미흡한 현장 조치로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회피‧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이튿날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는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용어통일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형석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0일 오후 지자체장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이와 같은 지침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 홈페이지나 공식 입장에는 모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고 표기돼 있다. 서울광장과 이태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의 명칭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와 같은 지침에 대해 “해당 내용이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등을 확인 후 서면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당 지침은) 정부가 이번 참사를 어떻게 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며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이번 참사를 축소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내 언론도 전부 ‘참사’라고 표현하고 외신들도 모두 ‘disasters’ 참사라고 하는데 왜 정부는 지자체에 그런 지침을 내리고 있는가”라며 “행사주체가 없어 제도가 미흡하다고 탓하는 것도 모두 정부의 책임회피”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직후 “이번 사고처럼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재난이나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주최자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무회의를 통해 “행사 주최자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이 중요하다. 권한 책임을 구분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말장난에 웃음까지…한국 정부와 외신이 바라보는 ‘이태원 참사’

 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 / 연합뉴스
 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 /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 답변 중 농담을 하고 웃음까지 지어 뭇매를 맞고 있다.

한 총리는 지난 1일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한 외신 기자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자 “저는 잘 안 들리는데요. 통역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라며 “제가 이해하기에는 지금 물으신 것은 결국 이러한 참사가 정부의 책임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이런 말 인가”라고 했다.

이에 기자가 다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냐”고 다시 질문의 요지를 설명하자 “주최자가 좀 더 분명하면 그러한 문제들이 좀 더 체계적 효과적으로 이끌어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것들이 없을 때 현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인파 관리에 대한 현실적 제도적 개선점이 있다”고 답했다.

이후 한 총리는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며 외신 기자의 질문에 빗대어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 수시로 웃음을 지어내기도 했다.

이날 외신기자 간담회에 걸린 화면에는 ‘Itaewon Incident(이태원 사고)’라는 문구가 걸렸다. 이에 영국 출신 프리랜서 기자인 라파엘 라시드는 해당 사진을 첨부하고 ‘Itaewon disaster(이태원 참사)’라고 표기한 게시글을 올렸다. 이를 두고 한국과 외신이 바라보는 ‘이태원 참사’가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총리실은 2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동시통역기 볼륨이 낮아 외국인 기자들이 통역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곤란해 하자, 한 총리가 기술적인 문제로 회견이 지체되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취지에서 해당 발언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위와 무관하게,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박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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