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흥국생명, 5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신종자본증권 가격 급락, 거래 감소…한국물 신뢰도 저하
흥국생명이 5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하면서 채권시장이 더욱 경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흥국생명이 5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하면서 채권시장이 더욱 경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최용재 기자]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 이후 정부와 금융당국의 노력으로 진정 국면으로 돌아섰던 채권시장에 다시 한 번 강력한 태풍이 몰려왔다.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권) 미행사 사태’ 때문이다. 이 여파로 채권시장에 ‘한파’가 닥쳤다.  

흥국생명은 지난 1일 최근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2017년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를 공시했다. 흥국생명이 콜옵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을 뿐이다. 채무불이행을 한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후폭풍은 크다. 금융사들이 통상 자본 확충 목적으로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지만 5년 내에 조기상환하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이번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역시 30년 만기 채권이다. 

흥국생명이 관행을 깬 것이다. 국내 금융사가 콜옵션 행사를 하지 않은 것은 2009년 우리은행의 외화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흥국생명과 함께 DB생명도 오는 13일 예정됐던 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날짜를 내년 5월로 미뤘다. 흥국생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보험사 전체로 자금경색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보험사의 선택이 채권시장에 찬물을 끼얹어 안 그래도 위축된 시장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보험사를 넘어 시장은 다른 금융사들의 자금조달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런 사태는 국내외 채권시장에서 국내 금융사 재무 상태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금리 상승으로 차환 발행이 어려워 자기자본으로 상환할 여유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콜옵션 행사일을 사실상 만기로 여기던 투자자들의 한국물(국내 기업의 외화표시채권)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됐다.

실제로 신종자본증권 가격이 급락했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외화채권시장에서 흥국생명의 액면가 100달러짜리 신종자본증권이 지난 4일 72.2달러에 거래됐다. 흥국생명이 콜옵션 미행사를 공시하기 직전인 지난달 말에는 99.7달러로 거래됐던 것에 비하면 30% 가량 떨어졌다. 

2025년 9월 콜옵션 만기인 동양생명 신종자본증권은 10월 말 83.4달러에서 이달 4일 52.4달러까지 떨어졌다. 내년 8월 만기인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은 10월 말 96.6달러에서 이달 3일 88달러로, 2024년 10월 만기인 우리은행 신종자본증권은 10월 말 87.5달러에서 이달 4일 77.8달러로 떨어졌다. 거래량 역시 ‘거래 절벽’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유안타증권은 “흥국생명 사태는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엄청나게 파장이 확산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그렇지만 이로 인해 채권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퍼졌다고 볼 수 있다. 당분간 개선이 될 수 없는 상황이라 파장이 이어질 것이다. 내년 초까지 차환이 진행되는 기관들은 상당히 우려가 된다. 내년에 위기감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일단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 2일 흥국생명과 관련해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일정, 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며 “흥국생명은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흥국생명은 수익성 등 경영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꺾이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은행·보험·카드·캐피털사 등 금융 업체들과 수차례 만나 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자금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회사채 발행 주기를 서로 겹치지 않게 조절하도록 하는 등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또 최대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를 통해 경색이 심한 여전채 매입을 개시했고, 이번 주부터는 단기 자금시장의 선순환을 위해 비우량채 지원을 위한 산업은행의 매입 프로그램과 한국증권금융의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시장의 신뢰도는 높지 않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최근 채권시장 위기감을 해결방법으로는 글로벌 달러 조달 여건이 좋아져야 한다는 근본적인 방법이 있다”고 말한 뒤 “그리고 국가적으로 정책적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은 기대감이 낮다. 앞으로도 적절한 정책이 시행될지 상당히 의문이다”고 말했다. 

야당의 비판도 거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흥국생명 사태와 관련해 “‘김진태발 금융위기’에 더해 흥국생명의 콜옵션 포기로 자금시장이 더욱 얼어붙으며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나뭇잎 하나만 떨어져도 우르르 무너지는 살얼음판 같은 위기이기에 땜질식 처방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연쇄 부도 상황을 전제하고 어디가 어떻게 무너질지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최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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