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가 애도기간이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조문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해도 과언 아니다. 6일 동안 대통령 조문은 이례적이다.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대통령으로서 무한 책임을 통감했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교회 위로예배’에서 “청년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 그대로 황망히 서둘러 떠난 청년들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면 다행이다. 다른 하나는 민감한 여론을 의식한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다는 위기감을 떠올렸을 게 분명하다. 이면에는 ‘세월호’ 트라우마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윤 대통령 조문 의도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사고 이전에 그런 마음가짐으로 국정을 운영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와 별도로 희생양 찾기와 여론전은 유감이다. 어느 정권이든 대형 참사 뒤에는 어김없이 희생양을 찾는다.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들 책임을 회피할 목적이다. 이태원 참사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은 이임재 용산경찰서장과 류미진 상황관리관을 대기 발령 조치했다. 무능한 현장 대응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건은 왜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근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두 사람 꼬리 자르기로 끝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쪽 제물이 이임재‧류미진 총경이라면 민간에서는 토끼머리 남성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토끼머리 남성이 인파를 밀었다는 풍문이 돌았다. 경찰은 토끼머리 남성을 쫒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허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토끼머리로 지목된 A씨는 무분별한 신상털이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네티즌들을 고소했다. 더불어 A씨는 경찰조사에서 사고 직전에 이태원역을 출발해 합정역에 하차한 지하철 탑승 기록을 제시했다. 어떻게든 자신들 책임을 면피해보려는 희생양 찾기가 부질없는 수건돌리기로 나타나고 있다. 특별수사본부 규모(501명) 또한 과장된 숫자놀음이다. 사고 당일 경찰이 부족했다는 여론을 의식한 과잉 규모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진상규명 의지에 달렸다.

용어 선택을 통한 여론전 또한 거북하다. 사고 초기 행안부는 지방정부에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반발이 일자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사실 참사와 사고는 큰 차이가 없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참사’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다. 어느 표현을 사용하든 차이는 없다. 다만 통상적으로 사고는 단순한 사건, 참사는 뭔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대형 사고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또 ‘희생자’는 사고나 자연재해로 애석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을 뜻하기에 ‘참사’와 ‘희생자’자 훨씬 진상에 부합한다.

어느 권력이든 언어를 장악하려는 습속이 있다. 어떤 용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의식은 형성된다.  박정희 정권은 5.16을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분칠했고, 전두환 정권은 5.18을 ‘시민혁명’이 아닌 ‘사태’로 폄훼했다.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세금구제’를 예로 들었다. ‘구제’라는 말에는 억압받는 사람이 있고, 구제하는 사람은 영웅이며, 방해하는 사람은 악당이라는 인식이 형성된다. ‘세금구제’를 선택한 부시 정부가 재미를 봤음은 물론이다. 거꾸로 노무현 정부는 ‘세금폭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폭탄은 나쁘고, 폭탄을 터트리는 자는 악당이다. ‘세금폭탄’을 터뜨리는 프레임에 갇힌 노무현 정부는 곤혹을 치렀다. 행안부가 ‘사망자’와 ‘희생자’ 사이에서 사망자를 선택한 건 국가책임을 회피할 의도다. ‘참사’와 ‘희생자’로 표현할 때 이태원 참사는 명확하다.

‘조문 정국’이 마무리됨에 따라 본격적인 정치 공방이 예상된다. 여든 야든 정치적 목적으로 참사를 이용한다면 역풍은 피할 수 없다. 한데 그런 조짐이 보인다.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긴급 현안 질의를 갖는다. 또 8일에는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실 감사가 진행된다. 대통령실과 정부 관계자가 출석하는 만큼 책임론을 둘러싸고 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태원 사고 조사 및 안전대책 특별위원회를 띄우고 사고 조사와 원인 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민주당은 이번 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요구서를 처리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6일 “대통령과 중앙정부, 지방정부, 경찰, 누구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역 없는 조사와 수사로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정부와 국회에 있다”며 국정조사 강행 의지를 거듭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진행 중인 수사가 먼저이며, 때가 아니라며 부정적이다.

정부와 여당은 꽃 같은 생명을 떠나보내고도 어물쩍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릴 책임이 있다. 또한 국가적 재난을 이용한 얄팍한 프레임 설정과 정치적 선동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탄핵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참사 원인을 파헤쳐 대응 매뉴얼과 시스템을 정비하는 게 우선이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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