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참으로 쪼잔한 나쁜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이렇게 비난했다. 대통령실이 순방 전용기에 MBC취재진 탑승을 불허한다고 통보한 이후다. ‘쪼잔하다’는 ‘마음 쓰는 폭이 좁다’는 뜻이다. 사실 세금으로 운영하는 전용기를 타라, 마라하는 건 월권이다. 전용기는 취재편의를 제공하는 수단이며 비용 또한 언론사 부담이다. 그러니 부당한 취재 제약이다. 탑승 불허 결정에 윤 대통령 의중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속 좁음을 넘어 알권리 침해라는 비판으로 확장된다. 만일 윤 대통령이 불허 결정에 개입했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자유’를 강조해왔다. 그가 말하는 자유에는 당연히 언론자유도 포함돼 있다. 허나 윤 대통령은 불편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특정 언론을 콕 짚어 배제함으로써 자신을 부정했다. 언론은 견제와 감시, 비판을 통해 존립 근거를 인정받는다. 물론 아무렇게나 보도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보도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언론은 수사권이 없다. 법원은 그렇다고 믿고 보도할만한 이유가 인정될 경우 ‘위법성 조각사유’를 들어 책임을 덜어준다. 언론은 문제를 제기하고, 판단은 뉴스 소비자가 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MBC 보도행태가 달갑지 않은 건 이해되지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낸 건 사려 깊지 못했다.

설령 못마땅해도 공직자라면 큰 틀에서 감내해야 한다. 나아가 허위보도라고 판단되면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런데 전용기 탑승을 불허함으로써 졸렬하다는 인상만 남겼다. 대통령실은 지난 UN 순방 때 MBC 비속어 보도 때문에 외교성과가 묻혔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시 김은혜 홍보수석은 욕설 대상은 미국 국회가 아닌 우리 야당이라고 해명했다.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 현 정부 인식 수준을 드러낸 속 좁은 해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발언 자체를 부정하며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민들은 비속어 발언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을 동의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 부하가 아니다”는 말로 정권과 맞섰다. 많은 국민들은 강단과 기개로 받아들였고 검사 윤석열을 지지했다. 윤 대통령이 보수야당 대권 후보에 오르고 대통령까지 당선된 데는 이런 이미지가 뒷받침됐다. 헌데 대인 풍모는 간 데 없고 좀스런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윤 대통령만 쪼잔한 게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풍산개 파양으로 사람 좋은 이미지를 구겼다. 파양 책임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입씨름하고 있지만 문 전 대통령이 반려견을 물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페북에 ‘반환’이라고 적었는데, 반환은 사물이나 물건에 쓰는 표현이다.

입양 자녀를 둔 최재형 의원은 “애틋함은 전혀 없는 매정함과 쓸쓸함만 느껴진다”면서 “입양부모 마음이 변하면 입양 취소나 입양아동을 바꾸면 된다고 했던 발언이 떠오른다”며 문 전 대통령 발언을 소환했다. 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언어는 의식을 형성하는 그물이라는 점에서 딱히 반박할 처지도 못 된다. 사룟값 때문이라는 야당 주장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소요된 인건비와 치료비 등 모든 비용을 퇴임 대통령이 부담해 온 사실을 아는가. 지난 6개월간 무상으로 양육하고 사랑을 쏟아준 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또한 반려견을 가족으로 인식했다면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전‧현직 대통령만 쪼잔한 게 아니라 여의도 정치도 졸렬하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9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싸잡아 쪼잔하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서 “김건희 특검은 극단적 선택”이라며 “배우자를 건들면서 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 수사 중 제일 쪼잔한 게 부인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량 있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 정치가 쪼잔하다”며 김건희 여사와 김혜경씨를 거론하는 여의도 정치를 비판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 배우자일지라도 죄가 있다면 단죄해야겠지만 지엽적인 것까지 들추며 모욕 주는 정치가 온당한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미국 민주주의는 아량과 관용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 상대를 동반자로 인정하는 한편 정쟁 상대마저 포용하며 성숙한 민주주의 전통을 쌓아왔다. 링컨은 자신을 ‘긴 팔 원숭이’라며 조롱했던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함으로써 남북전쟁에서 승리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6개월 만에야 내각 구성을 마쳤다. 정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벼랑 끝 민생과 북한 미사일 도발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쟁에만 매몰된 여의도 정치는 고장 났다. 야당을 존중하지 않는 여당, 사사건건 발목 잡는 야당으로 인해 증오와 갈등만 팽배하다. 윤 대통령을 쪼잔하다고 비난했던 정청래 의원을 포함해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자신들은 대범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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