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민주당, 대통령실·경찰국 등 예산 전액 삭감 단독 의결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 어두운 전망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무위원들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무위원들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호진 기자] 639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 심사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예산안에 대한 이견 차이도 큰 데다 양측 모두 비타협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각 상임위원회 곳곳에서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며 파행했다. 여기에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국정조사, 이재명(58)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 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인 오는 12월 2일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가 막을 올리자 민주당은 윤석열(62)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에 뒷받침이 될 주요 예산을 줄줄이 삭감했다.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이하 예산소위)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청와대 영빈관을 대신할 연회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편성한 외교네트워크 구축 예산 21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9일 행정안전위원회 예산소위에서는 윤 정부가 신설한 행정안전부 경찰국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관련 예산 6억300만 원을 전액 삭감하는 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또, 1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청와대 개방·활용 관련 예산 59억여 원을 통으로 날렸다.

이외에도 기획재정위원회 소관 영빈관 신축 예산(497억 원), 운영위원회 소관 대통령실 이전 관리 예산 중 시설관리 및 개선사업 예산(29억6000만 원), 국토교통위원회 소관 용산공원 개방 및 조성 사업을 위한 예산(286억 원), 법제사법위원회 소관 검찰청 4대 범죄 수사 예산(44억1000만 원) 등 예산안에 대해서도 전액 또는 부분 삭감한다는 방침이다.

권력기관 예산은 삭감을 추진하는 반면, 지난 정부에서 민주당이 추진한 사업들의 예산은 증액한다는 입장이다. 일명 ‘이재명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7050억 원으로 원상복구하는 안을 단독 의결했다. 또,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해 필요한 쌀값 안전화 지원 예산(1959억 원)과 중소기업·소상공인 등 취약차주 지원 예산(1조2797억 원),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3281억 원) 등도 증액하기로 했다.

이에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의 독단적인 결정에 유감을 표하고, 17일 시작되는 예결위 예산소위에서 최대한 복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행안위 위원들은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은 만장일치 의결로 진행해왔던 소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표결을 주장했고 (국민의힘이) 항의하며 퇴장한 틈을 타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했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찰국 예산을 원상회복시킬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다만, 국회는 예산을 삭감할 권한은 있지만 증액은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에 다수당인 민주당도 단독으로 이를 추진할 수 없다. 민주당 측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선 결국 정부 협조가 필요한 만큼 예결위에서 여야 타협점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야가 ‘이태원 참사’국정조사,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대장동 개발 의혹 관련 수사 등을 두고 대치를 이어가다 보니 자칫 예산안 처리가 발목이 잡히면 법정 시한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모든 상임위에서 수적 열세인 상황이라 뾰족한 수가 없다.

민주당이 여야 합의 불발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2월 1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는 정부 원안을 부결 시킬 경우, 정부는 새로 예산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 인건비 등 최소 경비만으로 정부를 운영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가뜩이나 취업난, 물가 상승 등으로 경제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준예산 사태까지 벌어진다면 위기 대처에 큰 공백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김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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