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공은 둥글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하는 카타르 월드컵이다. 카타르 월드컵은 초반부터 많은 화제를 낳았다. 우선 월드컵 92년 역사상 첫 중동, 첫 겨울 대회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개최지를 따져보면 유럽 11회, 남미 7회, 북미 1회, 동아시아 1회, 아프리카 1회다. 유럽과 남미가 축구 강국임을 고려하더라도 두 지역에 편중돼 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카타르 월드컵은 첫 중동 개최인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인접 중동 국가들까지 들썩이고 있다. 여름철이면 5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페르시아 만 습도를 피하기 위해 개최 시기도 겨울로 늦췄다. 선수들 건강을 고려한 결정인데 겨울 월드컵은 이색적이다.

다른 이야기도 풍성하다. 역대 가장 비싼 대회이자 개최국이 첫 경기에서 패한 월드컵으로도 기록됐다. 카타르는 이번 대회를 치르기 위해 경기장 신축과 인프라 구축에 무려 402조원을 쏟아 부었다. 이전 대회까지 가장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21조원)에 비해 20배 규모다. 카타르는 경기도 크기에 인구는 300만 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월드컵을 유치한 건 오일달러 덕분이다. 카타르 1인당 국민소득은 8만5,000달러 세계 5위다. 참고로 우리는 29위 3만5,000달러다. 카타르는 개막전에서 에콰도르에게 2대 0으로 패했는데 92년 역사상 첫 개최국 패배다. 경제력과 축구 실력은 연관 없다.

카타르 월드컵의 진면목은 공은 어디로든 굴러간다는 의외성에 있다. 안방과 변방 간 경계가 허물어졌다. 유럽과 남미는 주지하다시피 축구 종가다. 이에 비해 아시아 국가는 축구 변방이다. 헌데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 언더독 반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변을 낳은 첫 주역은 사우디아라비아다. FIFA랭킹 51위 사우디아라비아는 C조 최약체로 분류됐다. 반면 FIFA 랭킹 3위 아르헨티나는 이번 대회 유력한 우승 후보다. 월드컵 2회 우승 경험도 있다. 아르헨티나 팀에는 메시를 비롯해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공은 예상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대 1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변은 E조 독일과 일본 경기에도 이어졌다. 역시 객관적 전력 면에서 독일과 일본은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FIFA 랭킹만 보더라도 독일 11위, 일본 24위로 격차는 상당하다. 더구나 독일은 전차군단답게 월드컵 4회 우승 경험을 갖고 있다. 일본은 독일을 상대로 2대 1 역전승을 맛보았다. 전술과 전략, 선수들 투혼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앞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우리가 독일을 상대로 2대 0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시 독일 축구팀은 충격에 빠졌고 결국 16강 탈락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전차군단은 한국과 일본에 연달아 패하면서 공은 둥글다는 쓰디쓴 교훈을 얻었다.

첫 중동 개최, 첫 겨울 대회, 첫 개최국 패배, 아시아 국가 이변과 함께 카타르 월드컵은 공감과 연대 월드컵으로도 기록될 듯하다. 잉글랜드와 이란이 맞붙은 B조 조별 리그에서는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됐다. 케인을 비롯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일제히 경기장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카메라에는 ‘차별은 안된다(NO DISCRIMINATION)’는 노란색 완장도 잡혔다. 잉글랜드 팀은 카타르 정부의 소수자와 인권탄압에 항의했다. 또 이란 선수들은 국가가 연주될 때 침묵했다. 자국 내 강경진압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관중석 이란 응원단 또한 여성, 삶, 자유 피켓을 들고 선수들과 함께 공감했다.

이란은 지난 9월 17일 이후 두 달 넘는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게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다. 이란 정부는 사태 초기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약속 대신 강경 진압에 나섰다. 두 달 넘는 ‘히잡 시위’와 무력 진압 과정에서 이미 380여명이 숨졌고 1만6000여명이 체포됐다. 테헤란혁명재판소는 지난 14일에는 시위 참가자에 대해 첫 사형을 선고했다. 국제인권단체는 20여명이 사형 선고 위기에 처했다면 관심을 촉구했다. 이란 여성과 국민이 처한 현실을 헤아려 국제사회가 공감하고 연대하자고 했다.

이란은 이란혁명 전까지는 친미 국가였다. 그러나 이란혁명(1979년)과 미 대사관 인질사건(1980년) 이후 미국과 단교한데 이어 반미국가로 돌아섰다. 이란혁명 이후 신정체제 아래서 여성에 대한 억압은 가중됐다. 이란 석유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은 국제사회와 연대해 이란 정부를 압박해 왔다. 프랑스와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국가는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금지 법안을 제정했다. 이란에서는 히잡 착용을 강제하고 유럽에서는 금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히잡을 쓰고 벗는 선택의 자유는 이란 여성에게 있다. 국가가 강제할 권한은 없다. 둥근 축구공이 자유롭게 굴러가듯 카타르 월드컵이 이란 여성의 자유를 신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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