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나은미래플랫폼 ESG 경영연구소 소장/지식큐레이터
                     김정민 나은미래플랫폼 ESG 경영연구소 소장/지식큐레이터

[한스경제/ 김정민 나은미래플랫폼 ESG 경영연구소 소장·지식큐레이터] 경력 대부분을 ‘에디터’로 지낸 덕분에 직장생활 내내 여초 집단에서 일해 왔다.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많은 여성 에디터들 사이에 드문드문 청일점 같은 남성 에디터들이 있었기에, ‘로맨스가 별책부록’이긴 영 힘든 환경이었다. 그런 여초집단 환경을 우리끼리는 ‘아마조네스(Amazones)’라 칭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요즘 들어 나의 지난 에디터 생활을 되돌아보면 문득 피어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 많던 언니들(여성 에디터)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물론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꼬리를 무는 질문의 시작인 셈인데, ‘그 많던 여성 에디터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유리천장을 뚫고 위로 올라갔을까’라는 질문과 ‘그 많던 여성 에디터 중 과연 몇 명이나 직장에서 여성임원으로 남아있나’라는 질문이다. 아니면 이런 질문들은 그저 부질없는 푸념일 뿐이고, 그저 이런 상황은 그 많은 여성 에이터들을 제치고 임원으로 올라간 청일점 남성 에디터들의 탁월함과 인간승리의 방증일까?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와 나의 많은 선후배, 동료들은 어쨌든 어느 시점에 결혼이란 걸 했고 아이도 낳아 키우며 동시에 직장생활을 했다. 그리고 시점은 달라도 대부분 직장인으로서의 경력은 단절되었을 것이고, 그중 일부는 다양한 형태로 에디터의 삶을 이어오고 있을 것이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고 다시 화제가 되었을 때 나는 마음이 복잡하고 많이 불편했다. 하나의 이유는 책 속의 주인공이 하필 에디터였기 때문인데, 여초집단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남초집단은 오죽할까 싶어서다. 다른 이유 하나는 80년대 학번인 나의 직장생활과 82년생 김지영의 직장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92년생 김지영의 직장생활은 달라졌을까? 아니 조금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한 2002년생 김지영의 직장생활은 달라졌나? 

『82년생 김지영』은 출판 불황의 끝판왕인 요즘 시대에도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17개국에 판권이 팔리고 이미 7개국에서 출간되어 그 중 일본에서만 2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특히 일본판 책의 표지는 매우 의미심장한데, 얼굴 없는 여인의 이미지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바로 당신의 이야기예요!”라고.

ESG 경영에서 S 부분에 해당하는 이슈 중 대표적인 것이 ‘다양성’과 ‘양성평등’ 이슈다. 이번 정부 들어 다른 방향에서도 양성평등 이슈가 부각되었는데, 놀라운 점은 마치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듯한 세상의 반응이었다. ‘아니 우리사회에 진정 여성리더가 이리도 없단 말인가!’하면서. 그렇다면 세상은 정말 그 많던 김지영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일까?   

ESG 경영 보고서를 보면, 기업들이 앞다투어 여성임원 비율을 높이겠다는 로드맵을 수립하고, 여성리더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비율을 맞추기 위해 외부에서 모셔오겠다는 계획은 있을망정, 이미 보유한 잠재적 여성임원이란 자산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특정기간 여성 직원의 숫자는 공개하지만, 특정기간 이탈하는 여성 직원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워라밸은 개뿔, 일과 가정의 혼돈 속에서 내일 당장 사표를 낼지 말지 고민 중인 김지영이, 또는 오랜 세월 고착화된 성차별과 남성주의적인 인습 등으로 인해 퇴사를 고민하는 김지영이 곳곳에 있을 텐데 말이다. 이제라도 숨어있는 여러 김지영들을 찾아내서 그들이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을 먼저 고민하고 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이 들어간 모임이나 행사는 여성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거라며 기피해왔고, 부조리한 부분을 변하시키고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리는커녕 한 세대가 지나도록 세상이 고대로 있도록 내버려두고 결국은 남성위주 사회분위기를 고착화시키는데 일조한 부역자일 수 있다. 바로 그걸 깨달은 것이 『82년생 김지영』이 다시 화제가 되었을 때였다. 

더구나 그때 과거 내 혼돈의 직장생활을 함께 해준 딸아이가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심지어 남초 집단에서. 그것도 1년에 2번, 각각 한 달씩 배를 타고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나가 바다 한가운데서 실험과 연구를 해야 하는 직업인데, 배에서 이 책을 읽은 아이가 내게 물었다. 자신은 이 일이 참 좋은데 자신의 일이 지속가능하려면 결혼도 육아도 다 포기해야하는 거냐고 했다.

그때 나도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 나와서 청년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상담해주는 어느 박사님처럼,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예욧!’이라고 멋지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런 하나마나한 소릴 했을 뿐이다. 

“아무튼 세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조만간?”

ESG에서 ‘E’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S’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조금 다르다. 1.5℃를 낮추기 위해 온 세상이 협력하고 노력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들이 ‘S’를 통해, ‘S’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를 이미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데 답은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문제를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낮은 결혼률과 출산율의 해결책이 혼자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안보여준다고 해서 갑자기 올라갈리 만무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미 시스템은 잘 되어있는데 대부분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그럴 수 있다. 시스템의 작동여부를 살피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지금 확실히 아는 것은 세상이 ‘아무튼 달라지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모두가 -1.5℃ 실천에 예외 없이 동참해야하는 것처럼, 더 나은 미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젠더 이슈를 포괄하는 다양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환경을 위한 실천이 묵시록 예언 같은 공포마케팅으로는 확산이 어려운 것처럼, 양성 평등 문제를 미투나 페미논쟁과 같은 다소 불편한 트렌드(?)로 인식되게 하면 문제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환경을 위한 실천이 경제에 이롭고, 기업의 성과와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움이 되며 개인의 경제에도 소소한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일이듯, 양성평등 이슈를 다양성 이슈와 구분 짓지 말고, 오직 숫자(여성임원의 비율)라는 문제해결방식이 아닌 여성 직원의 지속가능한 직장생활을 돕는 시스템 구축으로 변화되길 바란다. 

 

       

김정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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