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부·여당, ‘재정 투명성 강화’·‘기득권’ 언급하며 압박 수위 높여
민주노총 “규약·규정 따라 연 2회 회계 감사…尹 정부, 노동개악 걸림돌 제거하기 위한 공격”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수 기자] 정부가 노조의 재정 투명성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과 갈등이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노조의 재정 운용을 들여다보고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공개한다는 게 정부의 취지지만 민주노총은 노조 압박을 위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정부와 민주노총이 ‘노란봉투법’과 ‘노동개혁’ 등 다양한 사안을 두고 대립 중인 만큼, 노조의 재정 투명성 강화 방침이 실현된다면 갈등이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 정부 “노조 재정 투명성 강화”…여당, 민주노총 ‘기득권’ 지목하며 압박 수위↑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조 활동에 햇빛을 제대로 비춰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노조 재정 운용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정부도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의 발언은 정부가 노조의 재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행 노조법은 외부에서 노조 재정 상황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노조법에 따르면 노조 대표자는 회계감사원을 둬야 한다.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그 내용과 감사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 아울러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노조를 대상으로 회계 감사를 하거나 회계장부 등 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국민의힘도 이날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민주노총을 겨냥해 비판 수위를 높였다. 민주노총을 ‘기득권’이라 표현하며 정부가 추진하는 주 52시간 근무제와 호봉제 개편 등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벌써부터 정부의 노동개혁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며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법과 원칙을 내세운 정부의 방침을 국민들이 적극 지지했고 국민들이 민주노총의 불법 정치 파업을 더 이상 관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사측이 무분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을 대상으로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야당이 밀어붙이는 노란봉투법, 불법파업 조장법이자 안심 파업법으로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며 “귀족노조의 기득권 지키기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고 노사 협력 수준을 높이는 노동개혁을 통해 미래세대에 일자리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 화물 안전운임제 확대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 화물 안전운임제 확대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노총 “尹 정부, 노동개악 걸림돌 제거하기 위한 공격”

민주노총은 정부가 밝힌 재정 투명성 강화 방침이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노조는 규약과 규정에 따라 운영하는데, 민주노총도 관련 회계 규율에 따라 감사를 받는다. 민주노총은 내부 규율에 따라 감사위원들을 구성하고 연 2회의 회계 감사를 받은 후 대의원대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이를 공개한다.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민주노총의 회계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노총은 이번 방침에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지지 기반 대부분이 반(反)민주노총 성향이 강하고 이를 결집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얘기다. 아울러 그동안 민주노총이 반대한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이런 방침을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당 고위관계자들이 민주노총을 ‘기득권’이라 표현한 것도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내부에 임금과 복지 등 상위에 속하는 조합원들이 있지만 이들은 30년가량 노조 활동을 통해 처우를 개선한 것뿐이고 현재 조합원 3분의 1 이상이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쟁의행위 역시 비정규직이 속한 사업장에서 벌이는 만큼, 일부를 가지고 ‘기득권’ 또는 ‘귀족노조’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소집하고 심지어 대통령은 ‘북핵과 같은 위협’이라고 발언하는 상황에서 나온 재정 투명성 강화 방침은 노조를 압박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갑자기 민주노총의 회계 얘기가 나온 것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악(노동개혁)을 하고자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노총 안에서 상위에 속하는 정규직들은 30년가량 자신들의 임금과 복지, 고용을 늘리기 위해 활동한 결과”라며 “현재 조합원 3분의 1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대부분 쟁의행위를 이들이 속한 사업장에서 하는데, 상위에 속하는 조합원만 가지고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귀족노조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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