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美IRA·EU CBAM 등, 무역장벽되는 규제들
ISSB·SEC 등 ESG 공시 표준화, 의무화 
파키스탄 홍수·영국 폭염 등 이상 기후...COP27의 '손실과 피해' 합의
ESG 투자 바람 이면에 '그린워싱' 기업들

[한스경제=정라진 기자] 2022년은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확산하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규제화가 이뤄진 한 해로 설명된다. 

올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했고, 이상 기후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으면서 ESG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ESG 투자 바람은 ESG 선봉장이었던 기업들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혐의를 받으며 주춤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ESG의 규제화 의지는 견고해졌고, 전 세계가 ESG 규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EU 원유와 가스가격 상한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의 규제안이 시행 중이거나 시행을 앞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울러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의 공시 표준화·의무화 움직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 ESG 이슈들을 톺아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美 IRA 법안 시행...현대기아차는 울상, 배터리업계는 수혜 기대

지난 8월 조 바이든의 기후 변화 대응 의지를 보여준 법안 IRA가 발효됐다. IRA는 7400억달러(약 1000조원 가량)를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서민 의료지원에 투자를 골자로 한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달러(약 480조원)를, 서민 의료보장에 640억달러(약 84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해 장기적 물가상승률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IRA는 기존 민주당 법안 '더 나은 재건(BBB)'을 △친환경 에너지 △자동차 산업 △기후변화 대응 △의료 지원에 집중했다. 

미국 역사상 대규모 기후 관련 법안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지만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등의 자국 보호주의이 강하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15일 백악관이 발표한 'IRA 가이드북'에 따르면 전기차 구매 시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제품에만 인센티브 신청 자격을 줬다. 전기차 배터리와 부품도 북미 지역에서 최소 50% 이상을 생산하고 조립해야한다.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보조금을 받지 못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미국 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IRA로 배터리·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전반적인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내 배터리 업계는 19조원 상당의 수혜를 볼 것이라고 산업통상자원부는 관측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는 2025년까지 미국 내 공장 설립에 총 40조원을 투자할 것이며, 첨단제조 생산세액 공제 제도로 19조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판 IRA' 탄소국경조정제도, 또 하나의 무역장벽
EU가 세계 최초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잠정 합의했다. CBAM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55% 감축(핏포55)'의 달성을 위해 논의된 제도로, EU의 탄소가격 대비 수입 제품의 탄소 배출량 차이에 대해 관세를 물릴 예정이다. 

CBAM은 2026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에 대해서는 내년 시범 적용하기로 했다. 초안에서 빠졌던 수소는 협의과정에서 추가됐다. 

EU는 CBAM 시행으로 탄소 배출 감축뿐 만 아니라 역내 기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현재 역내 기업들은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등 EU의 엄격한 규제에 따라 탄소배출 비용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 기업들은 탄소 배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자국 산업 보호 제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출국의 경우 CBAM이 추가 관세 성격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에 따르면 CBAM 시범적용 품목의 EU 수출 규모는 지난해 기준 △철강(43억달러) △알루미늄(5억달러) △비료(480만달러) △시멘트(140만달러) 등이다. 

이에 정부는 시행에 앞서 CBAM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집행위 및 유럽의회 관계자와 좌담회를 갖고 CBAM이 WTO 등 국제 통상규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마련‧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COP27 홈페이지 
사진=COP27 홈페이지 

◆최악의 홍수 경험한 파키스탄...COP27의 '손실과 피해' 합의
파키스탄은 올해 최악의 여름을 보냈다.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홍수 피해로 17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약 3300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 10월 이번 홍수 피해 추산액이 400억달러(약 57조3000억원)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을 비롯해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식량난과 물가 급등, 달러 상세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개도국들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재원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지난 11월 열린 제27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는 폐막을 미루고 마라톤 회의를 이어간 끝에 의제화됐다.  

COP27 참석국은 개도국이 겪는 기후위기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에 따른 기금 마련에 합의했다. 다만 기금 조성의 큰 틀만 합의됐을뿐 피해 종류, 시점, 보상 받을 대상, 부담 대상 등의 구체적 사안은 정해지지 않고 다음 총회의 과제로 남겼다. 

◆러산 원유 가격 상한제 시행한 지 보름...러 "반발" 우크라 "아쉬워"
최근 미국·EU 등 서방 진영의 러시아산 원유가격 상한제가 시행된 지 보름이 지났다. EU와 G7, 호주가 상한제를 시행 중이며, 한국 역시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 가격 상한제는 러시아 원유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60달러로 정하고 상한선을 시장 가격보다 5% 낮게 유지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번 협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첫 논의가 됐다. 이 아이디어를 받은 EU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막겠다는 취지로 반대하는 회원국을 꾸준히 설득했다. 협상 막판까지 가격 상한을 더 낮추자는 폴란드의 반대가 있었지만 상한선은 결국 합의에 이르렀다.  

EU 측은 이번 합의가 러시아 수익의 감소와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안정, 신흥국 경제에 도움될 것이라고 봤다. 

G7 회원국과 호주 역시 EU의 합의 발표 이후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60달러로 합의했다. 

이에 러시아 측은 "상한제를 이행하는 국가에 원유를 팔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상한선이 너무 높다고 아쉬워했다. 

유럽으로 러시아 가스 수송하는 가스관. / 사진=연합뉴스
유럽으로 러시아 가스 수송하는 가스관. / 사진=연합뉴스

◆가스 가격 상한제, 난항 속 극적 타결...내년 2월 시행
EU가 수개월 간의 논의 끝에 내년 2월부터 천연가스 가격 조정 메커니즘인 가스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19일 EU 에너지장관 이사회는 상한선 가격은 네덜란드 가스 거래소인 TTF 선물 가격 기준을 메가와트시(MWh) 당 180유로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논의된 메가와트시 당 275유로보다 더욱 강화된 내용이다.  

내년 2월 15일부터 1년 간 시행될 예정인 상한제는 3일 연속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가동된다. 요건은 TTF의 선물 가격이 메가와트시 당 180유로를 넘고, 글로벌 시장의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35유로를 넘는 것이다. 

여기에 에너지 공급과 재정 안정성, EU 내 가스 공급 등의 위험이 있을 시 즉각 중단 할 것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앞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량을 감축했다. 이에 따른 가격 급등으로 시장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했지만 상한 가격을 두고 이견이 계속됐다. 

이번 가격 상한제 합의는 만장일치가 아닌 가중다수결제 투표로 이뤄졌다. 가중다수결제는 27개 회원국 중 55%인 15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찬성국의 전체 인구가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일 경우 표결 결과가 인정되는 방식이다. 이번 투표에선 가격 상한제 반대 목소리를 낸 독일이 선회했고, 헝가리가 반대,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는 기권했다.

◆ISSB·SEC 등 ESG 의무 공시 가속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공시 표준화와 의무화 추진하고 있다. 

SEC는 3월 기후 정보 공시 기준 초안 공개, 내년부터 단계적 의무화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기준에는 스코프1, 2뿐(직간접 배출)만 아니라 스코프3(공급망 배출)까지 포함한다. 미국 증권시장 상장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 리스크 관리내용 등을 내년부터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지난 3월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의 ISSB도 지속 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위한 초안 공개했다. 연내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스코프3와 이중중대성 공개 등의 이슈들로 인해 발표는 내년 초로 미뤄졌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ESG 공시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2025년까지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이, 2030년까지 모든 상장사가 ESG 공시를 해야 한다. 

◆ESG 강조한 '지속가능한 배터리' 입법 추진
지난 3월 유럽의회에서는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재활용 원료의 의무 사용 비율을 제정하는 등 세계 최초 '지속 가능한 배터리' 입법 추진, EU 이사회 표결을 거쳐 연내 법안 최종 발효를 앞두고 있다. 이번 법안은 2020년 EU 배터리 법안 채택을 시작으로 2년여 간의 논의 끝에 세부사항 등을 조율, 법안을 완성했다. 

EU 회원국들은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역내 판매 중지 목표 달성 등을 위해 '지속가능한 배터리' 법안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지속가능한 배터리' 법안에는 △공급망 실사 의무 △탄소발자국 정보 공개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 △폐배터리 수거 등의 규정을 포함해 배터리의 생애주기에 걸쳐 지속 가능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동식 △EV 차량용 △경량운송수단(LMT) △산업용 등에 들어가는 모든 종류의 배터리가 규정 적용 대상이 된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 / 사진=블랙록 홈페이지
래리 핑크 블랙록 CEO / 사진=블랙록 홈페이지

◆'그린워싱'으로 얼룩진 ESG 선봉 기업들
ESG 투자 바람이 2018년 시작된 이후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혐의로 골머리 앓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ESG 투자의 선구자라고 불린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 CEO의 래리 핑크는 석탄 중독자, 그린워싱 등의 '무늬만 ESG'라는 비판을 받다 결국 사퇴 압박까지 받았다. 

2020년 블랙록은 환경지속성을 이야기하면서 "석탄 투자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말한 바있다. 그러나 블랙록은 꾸준히 석탄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올해 초 한 보고서에 따르면 블랙록을 포함한 글로벌 자산 운용사들은 새로운 석탄 프로젝트와 주요 석유 및 가스 회사에 수백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도이치뱅크의 펀드운용 자회사 DWS 역시 그린워싱 혐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 검찰은 그린워싱과 투자 논란으로 프랑크푸르트에 위차한 DWS와 도이치뱅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아쇼카 윌더만 당시 DWS 대표는 사임했다. 

여기에 DWS는 독일 소비자 단체에 기업 마케팅 자료에서 펀드의 친환경 자격 증명을 허위로 표시한 혐의로 고발됐다. 블랙록과 마찬가지로 석유 투자 관련한 의혹이다.

소비자 단체에 따르면 DWS는 마케팅 자료에 석탄 등 부문의 투자는 없다고 홍보했지만 기업은 해당 산업에서 최대 15% 수익을 내는 회사에 투자를 할 수 있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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