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한전 적자에 갈린 시선…與 "원전 가동 늘려야"·野 "요금 인상이 해결책"
文정부 때도 원전비중 등락 거듭…요금인상 주원인은 연료비 상승
"독립적인 전기요금 규제기관 출범시켜 정치적 압박·부담 해소부터" 
울산 울주군 서생면 새울원자력본부의 신고리 3·4호기 전경. / 한국수력원자력
울산 울주군 서생면 새울원자력본부의 신고리 3·4호기 전경. / 한국수력원자력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한국전력의 채권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거쳐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다. 한전의 역대급 적자를 바라보는 업계와 전문가들의 시선은 첨예하게 갈린다. 직전 정부인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탈원전) 정책을 원인으로 꼽는 이들은 당초 계획대로 원전을 가동했다면 한전의 적자가 30조원대에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상황에 직면한데다 현(現) 정부에서도 연료비연동제가 사실상 무력화돼 한전의 적자 문제를 더 확대했다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부터 도마 위에 오른 한전의 적자 문제는 올해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정부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KDB산업은행에 5600억원 규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분을 현물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한전의 적자 등으로 산은의 재무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판단에서다. 올 들어 3분기까지 한전의 영업손실은 21조원에 이른다. 

여권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주요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2017년 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탈원전을 추진하면 2022년부터 전체 용도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보고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양금희 의원은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대진원전·천지원전 건설 사업 중단으로 발생한 비용 보전 금액 9000억원도 국민들의 조세로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26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때 가동이 지연되거나 조기 폐쇄된 △신한울 1·2호기 △새울 3·4호기(신고리 5·6호기) △월성 1호기 등 원전 5기가 가동됐다면 한전의 적자를 7조원가량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12월까지 해당 원전 5기가 생산하지 못한 전력량은 387억kWh(킬로와트시)로, 이를 한수원에 정산하면 2조395억원이었으나 가격이 비싼 LNG 발전사에 9조 96억원을 지불하게 됐다는 계산이다.  

전기요금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이창양 장관도 한전의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 원인은 "탈원전"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10월 국회 산자중위회의 산업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발전자산이 크게 감소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차 에너지정책 자문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차 에너지정책 자문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야권은 문재인정부가 점진적 탈원전을 추진해 지난 5년간 실제로 가동이 중단된 원전은 월성원전 1호기뿐이라고 반박한다. 2017~2018년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가동이 미뤄진 신한울 1·2호기까지 포함해 기회비용을 살펴봐도 한전의 적자에 미쳤을 영향은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회 산자중위 소속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것은 위법한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문재인정부 때 (사실상) 탈원전이 시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적자 때문에 한전이 적립금 플러스 자본금이 줄어들어서, 현재 빚은 70조인데 그냥 놔두면 20조~30조원밖에 빚을 못낸다. 그러면 위법한 상태가 된다"며 "(한전채 발행 한도 확대는) 위법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고, 전기요금 인상은 그것과 상관없이 한전을 파산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여권에서) 한전채를 더 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국민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전 적자의 원인이라는 여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안전성 문제로 조기 폐쇄한 월성 1호기는 전체 전력 공급의 1%도 안 되는 작은 발전소였다. (그 외) 신규 원전은 안전성 문제 때문에 (가동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이라며 "(전기 원가가 오른 것은) 석유·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가격 인상으로 연료비가 올랐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때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를 윤석열정부는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여전히 남 탓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나라 원전은 전반적으로 노후 원전으로 평균 나이가 27년 정도 된다. 보통 설계 수명이 30~40년이니까 노후화가 많이 진행된 것"이라며 "그래서 원전 이용률이 떨어진 것인데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의 적자가 커졌다고) 얘기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전기요금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은 유가(油價)"라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한전의 전력통계를 살펴보면 국내 발전량 가운데 지난 10년 동안 원전 발전 비중은 등락을 거듭했다. 최대 30%대까지 올랐던 원전 비중은 문재인정부가 집권한 2017년(26.8%)에 이어 2018년(23.7%)까지 내려갔지만, 2019년(25.9%)과 2020년(29.0%)에는 다시 반등했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도 전력거래량(53만7014GWh)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8.0%(15만441GWh)에 달했다. 문재인정부가 집권한 2017년과 비교하면 0.9%포인트 높은 수치다. 이는 문재인정부 때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을 뿐, 정비 중인 원전을 제외하면 모두 가동했기 때문이다. 

다만, 발전단가가 싼 원전의 발전량이 2017·2018년 줄어든 것은 한전의 비용부담을 가중시켜 요금 인상 압력의 요인이 됐을 수 있다. 이듬해부터 원전 발전량이 늘어나도 직전 감소분의 영향은 이미 누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이 전기요금 인상의 주원인이라는 주장은 다소 근거가 부족하다. 지난해 8년 만에 전기요금을 올린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연료비 상승'이었다. 실제 당시 화력발전용 천연가스의 수입가격은 직전해보다 70%가량 급등했다. 

계속된 한파에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1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계속된 한파에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1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27일 에너지전환포럼과 이데일리·김한규 의원실·양이원영 의원실·양경숙 의원실이 '한전과 가스공사의 천문학적 적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주최·주관한 '에너지시장 정상화를 위한 긴급토론회'에서는 전기요금 의사결정 체계에서 정치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영산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한전의 적자 문제 대해 얘기해보면 결론은 항상 간단하다. 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요금 정상화가 쉽지 않은 이유는 의사결정체계가 꼬여 있는데다, 정부신용(국가신용)을 이용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부분 때문에 제때 요금을 올리지 못하고, 항상 늦게 요금을 올려서 그 사이 채권시장이 왜곡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비용이 비싼 전기를 많이 쓰고, 나중에 비용이 저렴해지면 올려서 적게 쓰는 왜곡된 자원배분이 일어날 수 있다"며 전기요금과 달리 석유의 가격이 쉽게 조정되는 이유는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됐기 때문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요금에 일일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규제기관을 조속히 출범시켜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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