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척박한 환경 사하라 사막, 전통을 지키는 베르베르인
해가 진 사막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
사하라 사막 전경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튀니지=한스경제 이수현 기자]  "오직 두 창조물만이 사막에서 재미를 발견해. 베두인, 혹은 신"

1960년대 명작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대사처럼 사하라 사막의 겨울은 여전히 뜨거웠다. 끝없이 펼쳐진 노란 모래와 따가울 정도로 작열하는 태양. 과연 이곳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일까 마음 속으로 끝없이 되뇐다.

수도 튀니스에서 약 500km 떨어진 두즈(Douz)는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변덕스러운 날씨의 튀니스의 달리 두즈의 겨울은 한결같이 덥고 건조하다. 거기에 햇빛은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을 뜨는 게 힘들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니 마치 외계행성 어딘가에 떨어진 기분이다. 

사하라 사막 전경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사하라 사막 전경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하지만 죽음의 땅 사하라에서도 생명은 살아간다. 사하라 사막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베르베르인은 도시화의 영향으로 많이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막에서 그들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튀니지 정부는 사하라 사막 일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고 베르베르인은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두즈에서 즐기는 사막 여행은 LTV 투어와 낙타 투어 등 여러 가지다. 그중 낙타를 타고 베르베르인 캠프를 방문하는 코스를 즐겨보기로 했다. 그리고 베르베르인의 안내를 받으며 낯선 이방인도 한 걸음씩 사막 깊숙이 들어간다.

사막에서 쉬고 있는 낙타들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드넓게 펼쳐진 사막은 어떠한 생명체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의지할 대상은 베르베르인과 낙타뿐이다. 낙타는 사람을 태우는 것이 익숙한 듯 가볍게 앞으로 나아간다. 사방이 모래로 뒤덮인 사막에서도 낙타는 가뿐히 길을 찾고 곳곳에 자란 식물을 간식처럼 뜯어 먹는 여유도 보인다. 

한참을 안으로 들어간 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베르베르인은 모래언덕을 그늘 삼아 눕고 낙타도 다리를 접고 앉는다. 사진을 찍으러 언덕 위로 올라가려 하니 푹푹 파이는 모래가 발목을 잡는다. 사막의 모래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면서 작디작은 입자로 변했다. 모래를 한 움쿰 집어 보면 비단을 만지는 것같이 부드럽기만 하다.

낙타를 타고 1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베르베르인 캠프에 도착했다. 캠프에서는 베르베르인들이 손님맞이 한창이고 낙타들은 구석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다.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고수하지만 전기와 수도관 등 최소한의 시설은 갖추고 있다.

빵을 반죽하는 베르베르인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완성된 전통 빵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캠프에 도착한 기자를 위해 베르베르인들은 전통 음식을 준비했다. 뜨거운 사막은 베르베르인들에게 주방이나 다름없다. 밀가루를 잘 반죽한 후 천에 싸서 사막 모래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뜨거운 모래에 잘 구워진 반죽을 꺼내면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베르베르인의 전통 빵이 완성된다.

재료는 밀가루뿐이지만 맛은 놀랍기만 하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베르베르인들은 빵과 함께 올리브와 전통 소스인 하리사(harissa) 등에 찍어 먹는다. 특히 하리사는 새빨간 겉모습처럼 알싸한 매운맛이라 매운맛이 그리웠던 한국인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튀니지 샐러드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빵에 이어 베르베르인의 코스 요리가 줄줄이 등장했다. 오이와 토마토, 올리브 등을 넣은 샐러드와 계란과 양파 등을 넣은 튀김 '브릭'(Brik), 살코기를 조리한 에스칼로프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소시지까지 사막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진수성찬이다. 

베르베르인의 말을 들어보니 사막에서는 이방인을 접대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생존이 힘든 사막에서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생존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튀니지를 비롯해 이슬람권 국가를 방문하는 손님을 초대해 만찬을 즐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술은 없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친분을 쌓는다. 이 모든 것이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생존전략이자 전통이다.

사막 모래 위 작은 발자국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사막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던 베르베르인도 가장 햇빛이 강한 오후 12시~ 4시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낮잠을 자거나 숙소 안에서 밀린 일을 하는 등 체력을 비축한다. 그리고 태양이 점차 저물면 그들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사하라 사막의 노을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사막의 풍경은 이전과 달라진다.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있을 때는 세상이 노란색으로 보이지만 해가 기울어질수록 그늘이 짙어진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끝에서 보이는 노란 노을은 사막 여행 중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절경이다.

태양이 빛을 잃어가고 하늘에 어둠이 찾아온다. 뜨거웠던 모래는 어느덧 차갑게 식어 신발이 없으면 발이 시릴 정도다. 뜨거운 햇빛이 없으니 건조한 대기와 강한 바람은 사막의 기온을 단숨에 떨어뜨린다. 말로만 들었던 사막의 밤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사막 하늘 위에 떠오른 별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사막 하늘 위에 떠오른 별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추운 날씨에도 사막의 밤은 놓치면 아쉬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늘에 떠 있는 수천 개의 별은 어디서도 쉽게 접하기 힘들다. 캠프 중앙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멍하니 하늘의 별을 세어본다. '불멍'에 이어 '별멍'까지 즐기다 보면 사막 여행의 진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사막의 추위는 더위보다 강했다. 공기를 들이마시면 폐까지 얼어붙는 듯한 추위는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가져온 게 다행으로 느껴질 만큼 아찔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막의 하루는 도시보다 빠르게 끝난다. 오후 10시가 되면 사방이 고요해지고 이따금 들리는 바람 소리만이 귓가에 맴돈다. 그렇게 사하라 사막의 하루도 저물어간다.

사하라 사막 일출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사하라 사막 일출 / 튀니지=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오전 7시, 사막의 하루도 다시 시작된다. 겨울 사하라 사막은 7시 30분이면 해가 뜬다. 다시 사막은 노랗게 변해가고 기온도 점차 올라간다. 장애물이 없는 사막은 일출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텐트를 나와 커피를 마시며 점점 밝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난날 여행 중 피로를 날린다.  

해가 완전히 떠오른 후에는 다시 낙타를 타고 두즈로 돌아간다. 하루 만에 정이 든 낙타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거닌다. 고운 모래와 낙타의 흥겨운 발걸음, 뜨거운 태양과 베르베르인의 정겨운 노랫소리까지. 사막은 그 어디서도 즐길 수 없는 독특한 볼거리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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