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누구는 웃고, 누구는 웃지 못한 시상식
현 사태, 오로지 심석희 잘못일까
메달 시상식에 나란히 선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심석희(왼쪽)가 땅을 응시하고 있다. /SBS 방송화면
메달 시상식에 나란히 선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심석희(왼쪽)가 땅을 응시하고 있다. /SBS 방송화면

 

[한스경제=김호진 기자]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여자 간판 최민정(24·성남시청)이 4관왕을 차지하며 4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시상대에 오른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맏언니 김아랑(27·고양시청), 막내 서휘민(20·고려대)도 함께 기뻐했다. 하지만 심석희(25·서울시청)는 고개를 숙였다. 정녕 모두가 웃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

여자 대표팀은 9~11일(이하 한국 시각)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호성적을 거두고 돌아왔다. 최민정은 1000m와 1500m, 3000m 슈퍼 파이널, 계주 3000m에서 정상에 오르며 4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선전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메달을 휩쓸며 이 종목 최강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모두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쏠렸다.

기쁨으로 가득했어야 할 시상식에서 어색한 모습이 연출됐다. 서로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며 기뻐하는 선수들과 달리 심석희는 메달을 든 채 땅만 응시했다. 이때 김아랑이 서휘민에게 손짓하며 "걸어 줘"라고 말하자, 서휘민이 웃으며 심석희에게 메달을 걸어줬다. 함께 웃고 즐겨야 할 시상식에서 누군 웃고 누군 웃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심석희는 최민정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 여자쇼트트랙을 이끄는 간판스타였다. 그러나 최민정의 등장으로 주춤했고, 지난해 ‘큰 사건’으로 작아졌다. 사건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터졌다. 조재범(41) 전 코치의 폭로로 대회 당시 대표팀 심석희와 A 코치와 주고받은 사적인 메시지가 공개됐다. 최민정과 김아랑을 비방을 하는 내용을 비롯해 최민정을 고의로 넘어뜨려 메달 획득을 막겠다는 뉘앙스의 대화를 나눈 것이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결국 심석희는 대한빙상경기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품위 손상'을 이유로 국가대표 자격정지 2개월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5월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징계로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불발됐다. 지난 2월 징계에서 해제된 심석희는 우여곡절 끝에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개인 종합 8위에 이름을 올린 그는 복귀 이후 나름의 성과를 올렸지만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최민정(왼쪽)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연합뉴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최민정(왼쪽)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연합뉴스

 

사실 심석희도 큰 물줄기로 보면 피해자다. 어린 시절 자신을 지도해온 조 전 코치로부터 몹쓸 짓을 당했다. 이후 조 전 코치 측이 법정에 제출했던 변호사 의견서 내용이 한 매체의 보도로 공개되면서 2차 피해까지 당했다. 이때 대표팀 A코치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공개됐다. 징계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계속된 비난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되돌아봤을 때, 심석희의 죄로만 몰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해준 지도자는 있었지만 "선수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라"고 말해준 스승은 어디에도 없었다. 성적지상주의가 몰고 온 한국 쇼트트랙의 어두운 단면이 비친다. 심석희와 최민정 모두 아직 앞길이 창창한 20대 선수들이다. 한국 쇼트트랙의 계속된 선전을 위해서는 빙상계가 두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선수들은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으로 의지를 보였다. 이젠 빙상계의 어른들이 나설 때다. 

 

김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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