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부 '경제형벌 완화' 추진에 경실련 "재벌·대기업 범죄 조장" 우려 
환경운동연합 "尹, 기업에 너그러운 면모…임직원 범죄도 유독 예외 강조"
민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움직임에 "기업의 요구 받아 적은 기재부" 비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준비상황 점검 회의에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준비상황 점검 회의에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 대통령실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정부가 민간의 역동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경제 형벌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힌 가운데,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천명한 '친(親)기업' 기조가 현실화 되면서 '반(反)노동' 정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다. 일각에선 정부가 사실상 기업의 숙원을 해결해주는 듯한 모양새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일 제5회 공정경쟁포럼을 열고 '공정거래법상 형벌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논의했다. 앞서 기재부와 법무부가 지난달 26일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기업의 원활한 경영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경제형벌규정 개선 추진계획 및 1차 개선과제'를 보고한지 일주일 만이다. 

이날 토론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이상현 숭실대 교수는 "주요국은 형벌 조항이 없거나, 카르텔(담합) 등 일부 행위의 유형에만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정부가 공정거래법에 대해서는 지주회사 설립·전환 신고 의무 위반 등 3개 조항만 개선과제로 채택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최한순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던 시대에서 경제정의가 강조되는 시대로 변화하면서 형벌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공정위가 고발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때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토론을 주재한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현행 공정거래법상 형벌규정은 주요국에 비해 지나치게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며 "불합리한 처벌규정은 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민의 생명·안전과 무관한 단순 행정의무 위반인 경우에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은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공정거래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지만, 시민단체들의 시각은 다르다. 경제형벌 완화 추진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의견 등 정부의 전반적 정책 기조에 '친(親)기업·반(反)노동' 정서가 깔려 있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정부는 재벌·대기업 범죄를 조장하는 경제 형벌규정 무력화 작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밝힌 1차 경제형벌 완화 내용은 △형벌 폐지 2개 △과태료 전환 11개 △선(先)행정제재-후(後)형벌전환 5개 △형벌 형량조정 14개로, 정부가 제시한 32개 과제는 대다수 기업범죄와 관련한 형벌조항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는 조항이라고 봤다. 

경실련은 "정부안대로 개정된다면 우선 재벌 대기업들이 기업집단과 관련한 주요 사항을 미신고, 또는 거짓신고해도 처벌이 미약해 공시가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나아가 선행정명령·후형사처벌로 전환한다는 5건의 경우에는 위법행위를 해도 사후에 시정만 하면 되도록 해 위법행위를 조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그 외 정부가 발표한 나머지 개정안들 역시 형벌이 완화될 경우, 기업범죄가 늘어나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가 나서서 견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도 지난달 27일 논평을 내고 정부의 경제 형벌규정 개선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법치주의와 원칙·공정 담론과도 배치된다"며 "윤 대통령은 취임 후, 기업들에 너그러운 면모를 보이고, 임직원들의 범죄에 대해서도 유독 예외를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환경운동연합은 "정부가 책임주의를 언급한 만큼, 기업이 져야하는 만큼의 적정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그에 상응해 환경범죄를 근절하고 사전예방을 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기업을 위한 합리화만을 앞세우고 있다. '합리화'라는 말을 기업의 이해와 편의를 도모하는 방향으로만 사용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기업의 요구를 받아 적은 기획재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의견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기재부가 정부 부처로서 본분과 역할을 망각한 채 일개 기업법무팀에나 제출할만한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고용부에 제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의견을 거둬들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재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 규탄' 민주당 환노위원-양대노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재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 규탄' 민주당 환노위원-양대노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선 움직임에 대해 "법 도입 취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는 입법 쿠데타"라고 반발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정부의 기재부가 자신들의 소관법률도 아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악 시도하고 있다는 폭로가 있었다"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합법적으로 제정한 법률을 시행령으로 뒤집으려는 사실상의 시행령 쿠데타"라고 맹폭했다. 

환노위 소속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기업들이 대표이사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이른바 '재계의 소원수리'와 같은 맥락"이라며 "기재부는 아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 연구용역 및 고용부에 전달한 '개정방안' 자료제출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기재부는 올 초 중대재해법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안전보건최고책임자를 경영책임자로 본다', '사업장 안전보건 인증을 받으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본다' 등 경영계의 요구사항이 담긴 시행령 개정 방안을 고용부에 전달했다. 고용부도 정부의 국정과제 및 대통령 업무보고 등을 통해 하반기까지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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