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기업 자금조달 경색 심해져...금융당국 안정화 대책 발표
23일 오후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경제 부처장들. 사진 왼쪽부터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23일 오후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경제 부처장들. 사진 왼쪽부터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레고랜드발 신용 리스크가 폭탄이 되면서 기업들의 유동성 경색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부랴부랴 안정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는 한은의 긴축 정책과 대치되는 모순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 올해 3분기 회사채 수요예측 규모는 약 5조 5000억원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협회의 올해 3분기 공모회사채 수요예측 실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공모 무보증사채 수요예측은 모두 65건이다. 이는 지난해 3분기의 49건에 비하면 43%가 줄어든 것이며, 액수는 3조 5000억원(39%)이 감소한 것이다. 경쟁률은 196%로 역시 지난해의 348%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문제는 신용등급별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AA등급 이상 우량채는 4조 2000억원 예측에 9조 7000억원(233%)이 참여해 경조한 수준의 경쟁률을 보였다.

하지만 A등급은 예측 규모가 1조 1000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3분기의 2조 9000억원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경쟁률도 364%에서 61%로 1/6 수준으로 추락했다.

지난해 3분기에는 신용등급별 수요예측 비중을 보면 AA등급이 61%, A등급이 33%로 균형을 이뤘지만, 올해 3분기는 AA등급이 73%, A등급이 19%로 극단적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

또한 올해 3분기에는 16건, 95000억원의 미매각이 발생하며 미매각율 14%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3분기보다 13%p가 상승한 것이다. 특히 A등급에서 8건에 65000억원의 미매각이 발생하며 미매각율 58%를 기록했다.

이에 금투협 관계자는 "올해 3분기 물가상승의 영향으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통화정책 완화 기대가 약화됐다"며 "금리 상승으로 인한 기관의 평가손실 우려가 확대되고 발행사의 자금조달 비용 부담 증가로 발행시장 위축이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안전자산 선호심리와 발행시장 위축에 따라 발행사와 투자자 간의 희망금리 차이가 확대되며 결정금리도 지난해 3분기에 비해 20.8bp 상승했다.

고강도 긴축기조 지속에 대한 우려로 기관투자자의 평가손실 축소 및 발행사의 이자비용 절감을 위한 단기물 선호 현상으로 회사채 만기가 축소돼 발행됐다. 3년 이하 단기물 비중이 1년 사이 61%에서 65%로 상승했으며 2년 이하 초단기물도 15%p 상승한 23% 비중을 차지했다.

업권별 참여현황을 보면 3분기 전체 물량의 42%를 증권사가, 22%를 자산운용사가 가져갔다. 이외에 연기금 등이 22%, 은행과 보험사가 각각 7% 수준이다.

중요한 점은 연기금 등 기관은 AA등급 이상에서 24%의 높은 비중을 차지한 반면, A등급 참여 비중은 2%에 그쳤다는 것이다. 지난해 3분기 14%에 달했던 점과 비교하면 비우량채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배정현황도 참여현황과 비슷한 수준인데, BBB등급 배정도 증권사가 76%를 차지하는 등, 증권사 리테일 부문이 비우량채권의 대부분을 배정 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10월 회사채 공모 발행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SK인천석유화학, DGB금융지주, SK증권 등은 발행계획을 일단 철회했다. 이는 미매각 사태가 우려되는 데다 발행이 되더라도 높은 금리가 부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1500억원 규모의 모집을 목표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초유의 500억원 미매각이 발생했는가 하면, 한화솔루션은 1500억 목표 수요예측에서 주문이 130억원에 그치기도 했다. 한온시스템은 3000억원 목표치에서 미매각이 2500억원 발생했고, JB금융지주도 1000억원 목표치에 620억원 미매각이 발생했다.

이에 한국은행(한은)은 지난 20일, '최근 신용채권시장 상황 평가: 신용스프레드 확대요인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통해 금리상승 국면에서 신용도와 유동성이 낮은 신용채권의 투자수요가 크게 위축된 데다 한전채·은행채 등 초우량물의 발행 확대와 이에 따른 신용채권 간의 '구축(驅逐) 효과' 등, 공급요인이 가세해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신용스프레드는 국고채와 회사채 사이 금리 격차로 이 수치가 커지면 시장이 회사채 투자 위험을 높게 본다는 의미다.

이 같은 설명처럼 올해 은행채 발행 규모는 폭발적이다. 10월 20일까지 168조 6490억원이 발행되며 2021년 연간 발행액인 183조 2123억원의 92.1%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회사채 발행시장이 얼어붙으며 자금 조달을 위해 기업들이 은행 대출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 사이에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조달한 자금 규모는 93조 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13년부터 2019년 사이 평균 41조 5000억원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며, 무엇보다도 이 가운데 은행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이 71조 7000억원에 이르는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자금조달의 76.6%가 은행 대출에 의한  것이란 점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23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주재로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열고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α 규모'로 확대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원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을 합한 규모다. 

정부의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긴축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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