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성욱 기자] <경제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개인적인 시각(獨)으로 이야기(說)해보고자 합니다.>

재계 2위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가 장기 기업어음(CP)을 발행합니다. 그동안 줄곧 공모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던 SK그룹이 장기 CP로 자금조달창구를 늘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SK는 10일 3년 만기와 5년 만기 CP를 각각 1000억원어치씩 발행했습니다. 3년 만기 CP 금리는 연 5.629%, 5년 만기 CP 금리는 연 5.745%입니다.

SK의 장기 CP 발행은 여러모로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선 높아지고 있는 CP 금리입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보면 9일 현재 91~180일 CP 가중평균금리는 연 6.00%입니다. 한달 전(10월 11일) 4.37%에 비해 1.63%포인드 올랐습니다. 6개월 전인 5월 10일에는 2.19%였습니다. 3배가량 금리가 오른 것입니다.

271일~1년 CP 가중평균금리도 6개월 새 급등했습니다. 5월 10일 2.43%에 불과했던 금리가 8일 현재는 6.43%입니다.

물론 시장이 관심은 CP 금리가 급등했다는 것보다 SK가 회사채가 아닌 CP를 발행했다는 것이었습니다. SK가 장기 CP를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SK 측은 “자금 조달처의 다각화”를 장기 CP 발행 이유 중 하나로 설명합니다.

기업어음(CP) 최근 6개월 가중평균금리(자료=금융투자협회)
기업어음(CP) 최근 6개월 가중평균금리(자료=금융투자협회)

이 설명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왜?’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SK그룹은 그동안 주로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왔습니다. 신용등급 ‘AA+/S’의 최우수 등급인 만큼 회사채를 통해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회사채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0일 금투협회가 발표한 ‘올해 10월 장외채권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발행은 3조7000억원 규모로 전월에 비해 1조6000억원이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상환액은 8조53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상환액이 발행액의 2배 이상이 됩니다.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 –4조8379억원은 금투협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지난 2006년 이후 가장 큰 규모입니다.

특히 수요예측 미매각율(미매각 금액/전체 발행 금액)은 33.4%에 달합니다. SK와 같은 등급인 AA등급에서 10건(A등급 2건, BBB등급 이하 2건)의 미매각이 발생했습니다.

SK가 회사채 시장 대신 장기 CP로 자금 조달처를 바꾼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사채나 CP나 총액인수방식으로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발행사(기업) 입장에서는 목표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큰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는 수요예측에 있습니다.

공모로 이뤄지는 회사채는 수요예측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수요예측에 기관투자자가 경쟁적으로 몰리면 발행금리를 낮출 수 있고 또 발행금액도 늘릴 수 있습니다.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하면 그 원인과 상관없이 시장은 의혹의 눈길을 보냅니다. 기업 신용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식돼 다음 회사채 발행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CP는 수요예측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기업 내용을 비교적 숨기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 회사채 시장이 좋았을 때도 시장에서 우려감을 표하는 일부 대기업이 회사채 대신 장기 CP로 자금을 조달하고 했습니다. 

결국 SK 입장에서는 레고랜드 사태 등에 따른 여러 대기업의 수요예측 미매각 발생 등 채권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회사채 시장이 뛰어들 필요는 없었던 것이죠. 

CP 시장이 채권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도 SK 등 기업들이 장기 CP로 자금을 조달하는 이유 중 하나로 풀이됩니다.

지난달 채권 발행잔액(회사채+통안증권+금융채)은 2598조7000억원(금투협)입니다. 그러나 CP 발행잔액은 113조4978억원(한국예탁원 세이브로. 8일 기준)입니다. 채권 시장에 비해 20분의 1 수준입니다. 1년 이상 장기 CP는 34조3900억원입니다.

꽉 막힌 채권 시장에 비해 CP 시장이 거래에 여력이 있는 셈입니다.

기업들이 회사채 대신 장기 CP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자금조달처 다각화 차원에서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와 같은 금리 상승기와 불안한 채권 시장에서 CP 시장을 찾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CP 시장도 회사채 시장처럼 자금 조달처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자금조달이 시급한 기업 입장에서 CP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어 보인다”며 “하지만 신용경색이 장기화 돼 CP로 집중된다면 최악의 경우 CP 시장마저도 막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회사채 시장의 정상화가 시급해 보입니다.

김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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