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발 기름 인상 여파, 고스란히 생계 타격
기존 안전운임제 31일 일몰...3년 연장 여부 불투명
화물 노동자 위한 화물차라운지? 열악한 시설
'컵라면 하나'로 끝내는 화물노동자의 식사
"안전운임제 덕에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화물기사들 한목소리 호소
[한스경제=김근현 기자] "'귀족 노조'요?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몰라요. 매일 15~16시간 운전, 차에서 쪽잠, 집에도 못 들어가고 여가도 없이 일주일에 6일을 이렇게 생활하는데 월 300만 원도 못 법니다. 우리가 정말 '귀족'입니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화물연대 귀족 노조 지배' 발언이 총파업 중인 화물기사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울분이 터졌다. 백주영(27·화물연대 부산지부) 씨는 '귀족노조'라는 말을 듣고서 주 90시간 노동하는 화물기사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화물연대는 '전품목 적용'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화물기사들이 멈추자 대한민국 산업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건설현장은 시멘트를 수급할 수 없어 공사가 중단됐고, 서울시내 주유소에는 품절 딱지가 나부꼈다. 초장시간 근무하는 화물기사들이 '안전'을 요구하고 나서자 벌어진 일이다.
문득 화물기사의 실제 삶이 궁금해졌다. 기자는 8일부터 9일까지 화물노동자의 24시간을 동행취재해 살펴보기로 했다. 해가 어둑해질 무렵 부산역전에서 백주영 씨의 화물차에 올라탔다.
화물기사들은 "그나마 '안전운임제' 덕에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기존의 안전운임제는 컨테이너, 시멘트 품목을 운반하는 화물기사들에게만 적용돼 12월 말 일몰을 맞는다. 화물기사들은 3년 전의 열악했던 노동환경으로 돌아갈 걱정에 길거리로 나섰다.
같은 마음으로 2주간 총파업에 참여했던 화물연대 부산지부 조합원 백주영 씨는 생활고 때문에 착잡한 마음으로 업무에 복귀했다. 월 400만 원이 넘는 화물차 할부 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백주영 씨는 파업대오에 이탈하는 자신 때문에 피해받을 동료 기사들에게 미안해했다. 하지만 동료기사는 "다들 같은 마음이다"며 그를 격려했다.
백주영 씨는 부산에서 수도권, 수도권에서 부산을 오가는 기사다. 저속주행으로 컨테이너를 운반하면 하루 꼬박 걸린다. 이렇게 일해서 70~80만 원가량을 받는다. 여기에서 수수료 7%를 소속 사무실에 떼주고, 기름값 44만 원을 내면 19만원 정도가 남는다. 여기에 보험료, 차량 수리비, 세금 등을 제외하면 하루 15~16시간의 운전을 해 벌어들인 비용은 최저시급에도 못 미친다.
한 달 매출은 1800만 원 정도다. 기름값과 보험료를 빼면 월 순수익은 300만 원 내외다. 기름값이라도 떨어지면 그나마 순수익이 증가하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발 기름 인상 여파는 고스란히 생계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게다가 화물기사들은 '45일 결제'를 주로 이용한다. 일을 하고 난 뒤 45일이 지나야 돈을 받을 수 있다. 경력 5년 차인 27살 백주영 씨는 모아둔 재산이 없어 절약으로 이런 상황을 타개해 나간다.
개인사업자인 화물기사들은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등도 내야 한다. 매달 매출의 10% 정도를 세금으로 따로 빼놓다. 그러다 보면 한 달에 100만 원을 채 못 가져갈 때도 있다.
그나마 컨테이너 화물기사인 백주영 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자신을 따라 나서 화물기사에 입문한 2년 차 김주성(26) 씨는 안전운임제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25톤 윙바디 화물기사인 그는 컨테이너 운송 기사보다 비교적 적은 매출로 인해 한탕에 많은 짐을 실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먹고살 만한 돈을 벌 수 있다. 화물연대가 '전품목 적용' 안전운임제를 주장하는 이유다. 같은 화물기사지만 처우는 다르다.
보통 화물기사들은 일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주 6일 90시간가량을 노동한다. 트럭 한편에서 쪽잠을 자고 여가생활은 없다. 중간에 집에 들어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눈떠 있는 순간은 모두 다 일하는 시간이다. 그래야 월 400만 원에 달하는 할부 값을 메울 수 있다.
총파업을 잠시 미루고 업무에 복귀한 백주영 씨와 김주성 씨는 업무 시작 후 48시간 동안 씻지 못했다. 상하차 시간을 맞춰 움직여야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오늘은 씻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입가에 웃음기가 띈다. 둘은 동네 선후배 사이로 잠깐이라도 함께 씻을 수 있으니 더욱 행복했다. 매일 혼자 운전하는 업무 특성상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 적다. 짤막하게나마 씻으면서 말할 수 있다는 게 어쩌다 다가오는 삶의 낙이다.
8일 늦은 시간 성주휴게소 화물 라운지를 찾았다.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휴게소 화물차라운지는 화물기사들에게는 필수의 공간이다.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씻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 도로공사의 '큰손'인 화물기사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천장은 곰팡이가 덕지덕지 피어 있고, 벽지는 찢어진 채 회색 시멘트가 노출됐다. 이뿐이 아니다. 한겨울에 접어들었지만 화물차라운지 샤워실은 종종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 관리가 부실한 탓에 화물 기사들은 덜덜 떨며 찬물로 몸을 씻고 나온다. 화물기사들은 대부분의 화물차라운지가 비슷한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백주영 씨는 시속 75km로 정속 주행을 한다. 운행하는 화물차가 가장 기름을 아끼면서 달릴 수 있는 속도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운행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속도를 찾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는 노력이다. '안전운임제' 전은 더 빠르게 더 긴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과속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도 안전하게 운행할 여유가 생겼다.
본격적인 야간 운행에 나선 고속도로에는 화물차들이 줄을 이었다. 어두컴컴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백주영 씨의 시야에는 앞 화물차의 브레이크 등만 보인다. 단조로운 시야에 혹여라도 졸릴까 밥을 먹지 않았다. 졸음운전은 화물 기사 사망 원인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초장시간 하루 700km 이상을 이동하는 그에게 졸음은 복병이다.
자정을 넘긴 시각. 한 시간 반여를 더 달리면 충북 진천에 도착한다. 충북 진천 산골에 위치한 한 공장 앞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 한 끼도 먹지 못한 그는 배 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참으며 진천으로 향한다.
다섯 시간이 넘는 장시간 운행을 마치고 편의점 하나 없는 산골에 도착한 백주영 씨는 컵라면을 들었다. 9일 먹는 첫끼다. 졸음운전을 참기 위해 하루 종일 굶었던 그의 배를 채워줄 유일한 음식이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그가 먹은 음식은 졸음을 참기 위한 커피와 컵라면뿐이다. 화물기사들의 건강상태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5년 차 화물기사인 그는 화물운전에 뛰어들고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 지방간부터 허리디스크, 안구건조증 등 초장시간 운전을 하는 탓에 건강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 타격은 고스란히 몸에 전해졌다.
한평 남짓한 화물차 내부는 업무 공간이자 집이다. 좁디 좁은 그의 공간은 안방으로 변신한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후 냉장고에서 사이다 한 모금을 마신 뒤 휴식을 취한다.
매번 변동되는 그의 스케줄은 변수다. 보통 상차 시간은 6~9시이다. 9일엔 오전 10시 30분에 상차하기로 했다. 초장거리 운송을 마치고 하루 4~6시간의 취침을 하는 백주영 씨는 "안전운임제 덕에 잘 수 있다"고 말한다. 안전운임제가 도입되기 전 주지금의 매출을 맞추기 위해 하루 2~4시간만 자고 더욱 긴 초장거리 운송을 했다. 안전운임제 덕에 사람답게 살 수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며칠 후엔 일몰된다. 안전운임제라는 보호막이 없다면 더욱 멀리 운행할 수밖에 없고, 잠자는 시간은 줄어들어 과속을 하게 되고 졸음으로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화물노동자는 죽어간다.
지레짐작했던 화물노동자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돈을 떠나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영화 설국열차에서는 열차의 정상적인 운행을 위해 꼬리칸 출신 아주 작은 어린이들을 차출해 고장난 부품으로 대체했다. '저녁이 있는 삶' '주52시간'을 떠들었던 중앙 정치에 소외받은 대한민국 산업의 쳇바퀴는 노동자에게 강요해 떠받치고 있던 것이다.
쾅! 쾅! 오전 8시가 되자 공장 경비원이 단잠을 깨웠다. 상차 시간이 2시간 30분이나 남았지만, 경비원은 화물기사의 사정을 모른다. 경비원이 화물차를 상차지로 인도했고 그를 따라서 차를 이동했다. 백주영 씨는 졸린 눈을 비빈 채 컨테이너를 열었다.
이제 다시 기다림의 시작이다. 아직 상차 시간까지 2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기다림 속에 컨테이너 지부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9일 오전 날아온 문자는 총파업을 지속할지에 대한 투표에 나서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안전운임제는 쟁취해야 하지만 파업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모든 화물기사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액의 할부 값이 괴롭히는 생활고는 화물기사들의 신념을 괴롭혔다.
상차가 끝난 컨테이너를 봉인하고 실을 뜯어 자물쇠에 결합했다. 화물을 가득 실은 이 컨테이너는 해외로 향하고 누군가가 받기 전까지 열리지 않는다.
상차 후에 차량 점검에 나섰다. 운행전 차량 점검은 사고를 막기 위해 필수로 하는 프로토콜이다.
다시 5시간이 넘는 긴 시간의 운행을 시작한다. 그의 남은 반나절이 시작됐다.
하루가 돌아 다시 어둑해지려는 시간 컨테이너 야적장에 도착한 백주영 씨. 본인이 배정받은 위치에 화물을 내리러 간다. 그가 충북 진천에서 가져온 컨테이너가 크레인에 실려 야적장으로 이동한다. 이 컨테이너는 곧 컨테이너 선박에 옮겨져 기나긴 항해를 떠난다.
컨테이너를 내리고 주영씨의 하루가 끝났다. 오후 5시. 백주영 씨는 다시 사무실에서 지시받은 항구로 이동하고, 새로운 하루가 또 시작된다. 잠깐의 여가 시간도 없다. 그는 이렇게 주 6일 총 90시간을 일한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전부 운전만 하는 시간이다. 초장시간 일하는 화물노동자들의 하루는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대한민국 산업은 이렇게 화물노동자의 희생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텨왔다.
이날 화물연대 부산지부는 오전 10시 30분께 조합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투표 여부와 상관없이 파업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화물연대 지도부를 향한 질책도 이어졌다. 부산지부는 "파업에 대한 성과가 없는 것을 노조원 책임으로 돌린다"며 현 사태를 지적했다.
그리고 이날 화물연대는 오전 9시부터 전국 16개 지역본부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종료 찬반투표'를 진행해 61.82%로 파업 종료 찬성을 가결했다. 15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투쟁을 벌였던 전국 2만6000여명의 화물연대 조합원은 복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이 정부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종료된 만큼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화물연대는 총파업 철회 후 당정의 약속을 지켜보겠다고 했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부·여당의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제안'은 무효가 됐다"고 선을 그었다. 화물연대를 더욱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생계를 걸고 투쟁에 임했던 화물연대 노조원들은 다시 대한민국 산업의 쳇바퀴가 되기 위해 복귀를 선택했다. 본인들의 파업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면 안 된다는 결단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본인들의 생계도 포함된다. 적은 수익이지만, 달려 있는 식구들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계속해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를 시작해서 유류보조금까지 빼앗겠다고 말했다. 화물노동자에게 1년에 지원되는 유류보조금(4400L)은 2주면 동난다. 화물 노동자의 숨을 잠시나마 돌리게 할 수 있었으나, 그마저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생계를 가지고 협박하는 것만큼 치졸한 것은 없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노동자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춤을 추기엔 생각보다 희생하는 사람이 많다. 희생과 자부심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이제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압박으로 대한민국 산업이 돌아갈지 알 수 없다. 부품이 고장난 설국열차는 언제 멈출지 모른다. 화물연대는 정부와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화물연대가 총파업 철회로 산업현장에 복귀한 만큼, 정부도 그에 상응하는 답을 내놔야 한다.
김근현 기자 khkim@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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