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11년째 표류 중인 '보험청구 간소화법' 필요성에 여·야 공감대 형성
고용진 의원, 의료계 입장 일부 담긴 개정안 발의
업계 "어느 때보다 법안 통과 가능성 높다"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11년째 답보 상태에 있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11년째 답보 상태에 있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 모두 해당 법안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의료계 입장 일부가 개정안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최근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 의대생 국가고시 미(未)응시 문제로 형성된 의료계의 부정적인 여론 역시 법안 통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20대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실손의료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도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해당 법안의 개정안을 내놨다.

실손의료보험은 보험가입자가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 또는 통원치료 시 의료비로 실제 부담한 금액을 보장해 주는 상품으로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입자는 약 3800만명에 달한다.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편화 된 보험이지만, 정작 보험 혜택을 누리는 가입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한국갤럽을 통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입자 47.5%는 "소액이라서(73.3%)", "병원 재방문이 귀찮아서(44%)". "증빙서류 발송이 귀찮아서(30.7%)" 등을 이유로 보험을 청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해 지난 2009년부터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개선 권고가 있었지만, 뚜렷한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못해 국민의 불편은 계속되고 있다.

실손의료보헌 청구 간소화법이 통과되면 병원에서 발급하는 종이 서류류는 전자 문서로 디지털화하고, 건강보험심의평가원(이하 심평원) 전산망을 통해 증빙서류를 보험사로 전송하게 된다. 보험사와 의료기관 전산망이 연동돼 보험 가입자는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 증빙 서류를 발급하지 않아도 보험금 청구가 가능해진다.

다만, 의료계는 민감보험사의 사익편쥐, 중계기관을 심평원에 위탁하게 되면, 심평원이 정보를 집적하거나 향후 비급여 의료비용을 심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소비자 편익을 가장해 민간보험사 이익만을 위한 악법이 될 것"이라며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인 진료정보의 유출 가능성,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책임소재 문제, 중계기관 위탁의 포괄적 위임에 따른 문제, 심평원 위탁에 따른 건강보험법 위임 범위 위반과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위반 문제 등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문제가 많은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의협은 “진정으로 보험회사에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익제고 목적이라면, 보험회사 스스로 가입자들에게 안내 및 홍보 강화, 청구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며, “국회는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의료계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여 민간보험사의 이익만을 위해 환자 진료에 전념해야 할 의료기관을 악용하는 청구간소화법안을 즉각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 모두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연합뉴스

보험업계에서는 의협이 주장하는 '민간보험사 이익을 위한 악법', '정보 유출'에 대해선 "가능성 제로(0%)"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형 보험사 한 관계자는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민감보험사 사익편취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며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비급여 관리가 투명하게 관리된다면 소비자·보험사·의료계 모두가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진 의원이 발의한 이번 개정안에는 심평원이 서류전송 업무 외에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 또는 보관할 수 없도록 하고, 위탁업무와 관련하여 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고용진 의원은 “보험료는 매월 자동으로 나가고 있지만 보험금 청구 절차는 복잡하고 불편해서, 소비자가 청구를 포기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라며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되어 실손보험에 가입한 많은 국민들의 편익이 증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의료계의 완고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지만 보헙업계는 이번 21대 국회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법 통과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의료계 반발이 크지만, 반대할만한 충분한 명분이 떨어질 뿐 아니라 여·야에서 모두 해당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어 법안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면서 "여기에 최근 코로나 상황 속에서 파업·국시 미응시 등으로 의료계에 대한 부정적 여론 역시 의료계의 목소리를 작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실손의료보험 청구는 10년 넘게 매년 제기되기 되고 있는 문제"라며 "법안 통과는 분명 쉽지 않겠지만, 의료계의 반대 명분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켜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한덕 전주대학교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계약과 의료서비스의 주체인 보험소비자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해 봤을 때,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며 "다만, 보험업법을 급하게 개정하기 보다는 그 전에 의료계와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쳐 신중하게 검토를 하고 미진한 부분은 보완·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보험업계에서는 이미 디지털 금융이 본격화되면서 핀테크 업체와 협업을 통한 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키오스크나 모바일앱 등을 활용해 소비자 편익을 높인 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보험사와 협력하고 있는 곳들은 종합병원 등 규모가 큰 기관이 대부분이다. 실제 환자들이 자주 찾는 중소 개인병원들은 '병원 정보 유출', '환자 개인 정보 유출' ,'정보 유출에 따른 책임 및 분쟁 가능성' 등을 이유로 보험사와 협력을 꺼리고 있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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