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극장은 역대 최대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지난 10월 추석을 시작으로 점점 관객수를 회복하는 듯 보였으나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며 또 다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일일 관객수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한 지난 8일 2만1758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대형 배급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작 개봉을 미루면서 영화산업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모양새다. 반면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언택트 시대를 맞아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 극장 최대 위기...OTT가 살 길이다?

영화 '원더우먼 1984' 포스터./워너브러더스 제공.

최근에는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 워너브러더스가 한국 영화산업을 철수한 데 이어 내년 자사 영화 17편을 극장과 자사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HBO맥스에 동시 공개한다고 밝혀 영화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내년 공개되는 17편에는 ‘매트릭스3-레볼루션’(2003) 후속편 ‘매트릭스4’와 공포영화 시리즈‘컨저링3’, 마고 로비 주연작 ‘수어사이드 스쿼드2’, 동명 고전영화를 새롭게 만든 ‘듄’, ‘고질라 vs 콩’ 등 다수의 기대작이 포함돼 있다. HBO맥스 가입자는 이 작품들을 극장 개봉과 동시에 31일 동안 추가 비용 없이 볼 수 있다.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 등으로 워너브러더스와 작업해 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에 대해 “최악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비판했다. 놀란 감독은 “자신들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워너브러더스)의 결정은 경제적인 타당성이 없다. 심지어 가장 평범한 월가의 투자자조차 붕괴와 기능장애의 차이는 분별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배우들 역시 워너브러더스의 행보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워너브라더스는 12월25일 미국에서 극장과 HBO맥스로 공개되는 ‘원더우먼 1984’와 관련, 패티 젠킨스 감독과 주인공 갤 가돗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고 협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시국이 아닌 평상 시에 개봉했을 때 거둘 수 있는 수입을 고려해 각각 1000만 달러 이상 거액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원더우먼 1984’와 달리 내년 HBO맥스와 극장에서 공개되는 17편의 경우 이런 협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덴젤 워싱턴, 윌 스미스, 마고 로비, 키아누 리브스, 휴 잭맨, 안젤리나 졸리 등은 수익 분배의 불평등 문제를 지적했다.

이처럼 영화계가 극심한 혼란을 겪는 반면 넷플릭스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9월 넷플릭스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를 설립하며 한국 콘텐츠 강화에 나섰다. 국내 콘텐츠를 직접 기획, 투자하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동명의 인기 로맨틱 웹툰을 영화화한 ‘모럴센스’가 그 첫 작품으로 ‘좋아해줘’(2016)를 연출한 박현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국내를 대표하는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극장 침체로 수익을 얻지 못하자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넷플릭스에 영화를 파는 추세다. 송중기의 SF물 ‘승리호’(메리크리스마스) 와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NEW)에 이어 최근에는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영화 ‘차인표’가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 직행을 확정했다. 국내 영화 시장의 큰 손인 CJ엔터테인먼트는 아직 넷플릭스와 협업을 하지 않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천운을 만난 것 같다”라며 펀딩을 받고 있었던 구조인데 올해를 빌미로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거 같다. 공격적인 콘텐츠 투자의 결실을 맺은 게 아닐까 싶다“라고 했다.

■ 셧다운 규제에 발목 잡힌 극장..위기 극복 가능성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이 한 영화관이 비교적 한산하다./연합뉴스.

신작이 끊이지 않는 넷플릭스와 달리 관객수 절감으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극장은 진퇴양난에 처했다.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지난 5일부터 3주 간 오후 9시 이후 영업금지라는 규제가 더해지며 관객수는 급감했다. 프라임 시간대로 불리는 오후 7시~9시 사이에 영화 상영을 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영화 상영시간이 평균 2시간인데다 청소 시간 등을 감안하면 오후 6시대에 마지막 영화가 걸리게 된다.

CJ CGV 관계자는 “사실 상 영업중단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라며 “메인 프라임 시간대에 영업을 못해 32%의 매출이 줄어들었다. 이 많은 손해를 극장이 다 떠안아야 한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말 개봉을 예정했던 박보검 공유의 ‘서복’과 류승룡 염정아의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개봉을 연기하며 극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 신작들의 부재로 인한 다양한 기획전과 명작의 재개봉 등 여러 자구책을 내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다만 미국에서 HBO로 동시 공개하는 워너브러더스의 ‘원더우먼 1984’와 디즈니 픽사의 ‘소울’은 예정대로 크리스마스 시즌 개봉 예정이라 기대를 걸고 있다. CGV 관계자는 “원더우먼 1984’가 어떤 성적을 거둘지가 중요하다. 관객이 다시 극장을 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며 “관객 회복의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했다.

생존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극장은 넷플릭스와 ‘윈윈’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힐빌리의 노래’나 ‘더 프롬’ 등 넷플릭스 영화가 극장에서 선개봉하며 넷플릭스 가입자에게 홍보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CGV 관계자는 “극장이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최적의 플랫폼이라는 걸 입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며 “극장에서 보면 좋을만한 콘텐츠로 구성하려 한다. 배달 음식을 먹는 것과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게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고객이 느낄만한 극장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라고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극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박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지침을 강화하는 것은 순리지만,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는 극장산업에 새로운 제도와 지원이 이뤄져야 영화산업이 다시 정상화될 수 있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