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정라진 기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5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할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그러나 과거와 변함없는 것이 있다. 바로 '기업들의 유리천장'이다.

올해 초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 10년 내내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리천장지수는 10개 항목을 토대로 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을 지표화한 수치다. 한국은 평가 항목 절반 이상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남녀 소득격차'와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은 29위인 최하위를 기록했다. 여기에 △관리직 여성 비율 △남성 대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남녀 고등교육 격차 등은 28위다. 특히 남녀 소득격차는 평균 31.5%에 달했다. OECD 평균인 13.5%의 2배 이상 높다.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의 유리천장 역시 높다. 11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공기업의 21.9%가량이 여성 임원을 두지 않았다. 2018년과 동일한 수치다.

21.9%에 속하는 공기업은 △한국가스기술공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한국남동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마사회 △한국중부발전 △한전KPS 등 7개 사다. 이들은 여성 임원을 한 명도 선임하지 않았다. 그중 한국중부발전은 2021년부터 3년 내내 여성 임원을 두지 않았다.

공기업 한 관계자는 "여성 임원 비율은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과거부터 남초 기업들은 남성이 승진하기 더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입사 당시부터 여성의 자리가 적기 때문에 임원 비율까지 여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관계자의 말대로 공기업의 정규직 여성 비율은 평균 21.7%에 불과했다. 여성 비율이 가장 작은 곳은 대한석탄공사로 5.2%다. 10%도 넘지 못하는 곳이 3곳(대한석탄공사·가스기술공사·한전KPS)이나 됐다.

21.7%의 여성들이 경력단절 없이 일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남성과 동등한 승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고용률)은 결혼과 출산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5~64세 미혼 여성의 고용률은 기혼 여성의 고용률보다 높다.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2021년에도 약 14%p의 격차는 존재했다. 더구나 25~64세 남성의 경우 오히려 기혼 남성의 고용률이 미혼 남성의 고용률보다 높다. 여성의 경우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불행 중 다행은 ESG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기업들이 여성 임원 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하는 것이다. 다양성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부터 임원에 여성 자리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뒤 변할 강산에 '유리천장'도 포함되길 바라본다.

정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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