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검사와 의사. 서로 대척점에 있고 관련 없어 보이지만 관통하는 게 있다. ‘의리’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사람과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인간다운 처신이자, 타인을 배려하기에 권장할 덕목이다. 의리는 믿고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사다리이기도하다. 제대로만 발현된다면 의리는 사회적 연대 기능도 가능하다. 막다른 골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가. 핵심은 내부 집단으로만 향하는 싸구려 의리다. 내 사람 챙기고, 밥그릇 지키는 천박한 의리가 문제인 것이다.

국민의힘이 이종섭 호주대사 논란으로 휘청대고 있다. 이 대사는 피의자 신분이다. 윤 대통령은 그를 재외공관장에 임명함으로써 비난 여론을 자초했다. 이 대사는 21일 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했지만 때는 늦었다. 비난 여론을 달래기 위한 급조된 ‘이종섭 구하기’라는 점에서 여론은 싸늘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실 헛발질은 계속되고 있다. 임명 강행에 이어 이종섭 지키기를 고수하며 민심을 거스르고 있다. 내 사람 챙기는 윤 대통령식 ‘의리’가 화를 불렀다. 윤 대통령은 21일에는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당 위원장을 대통령 민생 특보로 임명했다. 또 한 사람의 자기 사람을 챙긴 것이다. 검찰 수사관 출신 주 특보는 윤 대통령과 광주지검에서 근무한 ‘20년 측근’으로 불린다. 

민주당 이 대표는 ‘방탄 변호사’를 대거 챙김으로써 ‘의리’를 실행에 옮겼다. 공천 결과 이 대표와 측근을 도운 변호사 다섯 명이 공천됐다. 경기 부천을 김기표, 경기 부천병 이건태, 광주 서을 양부남, 광주 광산갑 박균택, 서울 서대문갑 김동아 등이다. 이들은 민주당 우세 지역에 배정돼 국회 입성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한다. 당선되면 국회에서도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며 의리로 보답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변호사’ 타이틀 외에 변변한 정치경력이 없는 이들이 공천 받은 이유는 ‘친명횡재’를 빼고 해석하기 어렵다. 반면 이 대표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박용진 의원은 끝까지 응징함으로써 또 다른 의리를 보여줬다.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하고, 이 대표가 방탄 변호사를 공천한 맥락은 다르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내 사람은 챙긴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충성을 유도한 것이다. 물론 대법원 판결 전까지 이 대사 유죄는 예단하면 안 된다. 그렇다 해도 비판 여론을 무릅쓰면서까지 임명을 강행한 건 국민의 뜻과 배치된다. 이 대표 또한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은 찍어내고 우호적인 이들을 대놓고 공천한 건 오만하다. 중도층은 ‘방탄 변호사’ 공천에 비판적이다. 당을 사당화하고 줄서기를 강요한 그릇된 의리로 해석하고 있다.

검사와 의사 집단도 잘못된 의리를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검찰이 자기 집단을 보호하는 건 조직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의리다. 한때 성행했던 조폭 영화에서 근사하게 포장된 조폭 의리는 실상 밥그릇 의리다. 그들은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되면 유리구슬처럼 부서진다. 의대 교수들까지 가세하는 의료계 집단행동을 대하는 국민 여론이 싸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역 이기주의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을 지킨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국민들 눈에는 직역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밥그릇 의리일 뿐이다. 정부 대응도 문제지만 환자를 볼모로 하는 집단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영어 사전은 ‘의리’를 justice(정의)와 obligation(의무), loyalty(충성)로 표기한다. 사람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따르는 건 정의(justice)다. 그러나 충성(loyalty)을 강요하는 의리라면 조폭 의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밥그릇을 넘어서는 공동체 의리가 핵심이다. OECD ‘보다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는 우리사회에 싸구려 의리는 넘치지만 제대로 된 의리는 빈약함을 의미한다. 한국은 매년 최하위인데 지난해도 41개국 중 38위를 차지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다. 삭막한 공동체는 암울하다.

값싼 의리로 인한 여진은 일파만파다. 호주 교민들은 이 대사 부임을 반대하며 공항에서 반대시위를 펼쳤다. 국격을 입에 올리는 게 민망하다. 또 박용진을 밀어내고 공천을 받은 조수진 변호사는 성폭행 범 전담 변호사 논란에 휩싸이다 끝내 사퇴했다. 조 변호사는 초등생 성폭행 가해자를 변론하면서 아버지에 의한 것도 있을 수 있다고 해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싸구려 의리가 공동체와 한국정치를 망치고 있다. 내 사람 챙기고, 밥그릇 지키는 저급한 의리를 돌아보는 총선이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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