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커피 생산국들, 소규모 생산자 정보 없어 원산지 증명 어려움 겪어
“국가기반 시스템 구축해 소규모 농장 지원해야 쏠림 현상 막을 수 있어”
브라질 아마존의 불법 삼림벌채 현장 / 사진=연합뉴스
브라질 아마존의 불법 삼림벌채 현장 /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시행을 앞둔 유럽연합(EU) ‘삼림벌채규정(EUDR)'이 전세계 커피시장을 흔들고 있다. 에티오피아산 커피 주문량은 감소했고, 페루는 아마존에서 재배되는 커피 원산지 증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베트남은 유럽 커피시장 점유율을 높일 기회로 보고 있지만, 소규모 농가의 재배코드가 없어 규정 준수가 힘든 상황이다. 또 세계 최대 커피원두 재배지인 브라질은 자국 농업법에 따라 재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아직은 EUDR 시행이 시기상조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25일(현지시간) ABC뉴스는 유럽의회가 지난해 승인한 EUDR로 인해 세계 커피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EUDR은 EU 시장에 판매하려는 제품이 2020년 12월 말 이후 삼림벌채를 통해 전용된 농지에서 생산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골자다. 판매 기업들의 위성사진이나 생산지 위치 정보가 포함된 일명 ‘실사 선언서’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 선언서에는 인권 및 생산지 주민의 권리 보호 여부 등에 대한 정보도 포함해야 한다.

주요 의무는 올해 12월 30일부터 시행된다. 우선 대기업에 대한 보고를 먼저 의무화하고 중견기업은 18개월, 영세·소기업은 24개월의 준비 기간을 주는 등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대상 품목은 커피, 쇠고기, 코코아, 팜유, 대두, 목재, 고무, 목탄, 인쇄된 종이이며, 파생상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제품은 EU로의 수출과 27개국 전역에서 판매가 원천 차단되고, 규정 위반 시 EU 역내 매출의 최소 4% 수준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삼림벌채는 화석연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탄소배출원이다. 세계자연기금의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EU의 수입으로 인한 삼림벌채량이 중국 다음으로 많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삼림벌채로 인해 1990~2020년 EU보다 더 큰 면적인 4억2000만헥타르(ha)가 손실된 것으로 추정했다. EU는 새 법안이 매년 최소 7만1920ha의 숲을 보호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EUDR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총수출액 30~35%가 커피이며, 약 4분의 1은 EU로 수출된다. 그러나 규정 발표 후 일부 기업은 에티오피아가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에티오피아산 커피 주문을 줄였다.

미국 농무부(USDA)도 보고서에서 에티오피아의 대응이 느리다며 “에티오피아가 2월에 발표한 국가 계획은 소규모 농장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페루는 정보 수집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미 국제개발처(USAID)와 캐나다, 비영리단체 콘설베이션 인터내셔널(Conservation International)의 공동 이니셔티브인 ‘아마존 비즈니스 연합(Amazon Business Alliance)'이 실시한 EUDR 영향 연구에서 페루는 취약한 제도와 대부분의 농민이 토지 소유권이 없어 수십만 명의 작은 농가에 대한 정보 수집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된 커피의 40%를 EU에 수출하는 베트남은 이 법을 통해 유럽 커피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기회로 보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역시 작은 농가 제품은 재배지역 코드가 없어 원산지와 삼림벌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의 경우 EUDR의 영향과 상관없이 자국법에 의거해 농업을 계속할 것이란 입장이다. 카를로스 파바로(Carlos Favaro) 브라질 농축산식품부 장관은 “이 법에 간섭할 수 없으나, 우리는 국내법에 의거해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커피업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EUDR을 원안대로 시행한다면 수백만 명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원사들은 위원회가 제시한 목표 달성에 노력하나, 아직 규정을 준수하기에는 준비가 미흡하다”며 시행 일자 연기를 요청했다.

국제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에 조사에 따르면 농가의 약 80%는 경작지를 좌표화하지 않았으며 정확한 세부 규정도 모르고 있다.

EU 집행위는 업계 우려를 받아들여 기업들이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각 회원국 정부는 규정의 영향을 받는 국가와 협력해 소규모 생산자와 원주민이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캐노피의 렐렌 벨필드 정책 책임자는 ABC뉴스에 “EUDR 수행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특히 제품 출처 추적이 ‘뉴 노멀’이 될 경우 삼림벌채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벨필드는 다만 이 규정이 안전장치는 아니라면서 “일부 기업은 요건에 충족하지 않는 제품을 다른 곳에 판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명확한 데이터를 제공할 수 없는 소규모 농지들이 소외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각 생산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며 “각국은 수출을 추적할 수 있는 국가기반 시스템을 구축해 작은 농가를 도와야 대규모 농장으로의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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