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유럽·미국 등, 금융권 그린워싱 리스크 커져…상품 및 서비스 본연의 품질 강화 필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장 인근에서 그린워싱 반대 시위를 펼치고 있는 국제환경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장 인근에서 그린워싱 반대 시위를 펼치고 있는 국제환경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친환경 노력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이상 고온 기온이나 기상 이변은 더 심해지는 등,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 같은 심리적 피로감을 느끼는, 이른바 ‘그린퍼티그(Green Fatigue, 녹색 피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해, 심리치료가 요구되는 환경 불안(anxiety)이나 혹은 기후 불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2024 글로벌 소비자 트렌드' 보고서에서 거론된 6가지 소비자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이 그린퍼티그와 관련한 내용이다. 2020년 이후 미국이나 서유럽 등지의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 같은 그린퍼티그 현상이 나타나, 실제로 친환경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들고 친환경 소비 노력 역시 감소했다는 내용이다. 2023년 유럽과 북미 소비자들의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나 플라스틱 제품 사용 자제 등의 친환경 소비 노력은 2022년과 비교해 오히려 감소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조사기관 글로벌웹인덱스 조사를 봐도 친환경 제품 구매에 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률이 2020년과 2023년을 비교하면 29%p 감소했다. 재활용에 대한 의향 역시 9%p 저하했으며, 환경보호가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응답률도 10%p 줄었다.

이런 현상은 다름 아닌 ‘그린워싱'의 큰 부작용 때문이다. 또한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들 역시 문제는 그린워싱 기업 때문이라고 표적하는 경향이 짙다. 원인과 결과 관계를 따지기 전에, 그린퍼티그는 한발 더 나아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기업에 대해 분노를 유발하고, 심하게는 기업의 친환경 활동에 대해 불신을 조장하는 등, 다양한 측면으로 마구잡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KB금융경영연구소 김준산 연구위원은 그린퍼티그 현상의 부작용을 순차적으로 두 가지 층위로 분류했다. 우선 그린퍼티그를 겪는 소비자는 기후변화 문제 해결과 관련해 별다른 활동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문제해결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기업에 분노한다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린워싱'이란 표현은 지금처럼 광의로 쓰이기 이전엔 친환경 책임 전가라는 맥락을 가리켰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벨트가 쓰기 시작한 용어인데, 환경보호를 위해 수건을 재사용하라며, 친환경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호텔 기업들을 꼬집는 표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과거엔 환경운동가들이나 일부 소비자들이 기업의 그린워싱 행태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거나 ‘분노'했다. 그런데 최근엔 친환경 소비에 동참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며 그린워싱이란 표현도 널리 쓰이게 됐다. 의미도 함께 확장하며 심지어 최근엔 개개인이 생각하는 ESG 경영의 방향과 약간의 궤도 이탈만 있어도 그린워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조차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영국 컨설팅회사 센수가 2022년 10월 소비자 16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가 놀라운 근거다. 응답자의 93%가 지난 한달 이내 그린워싱 사례를 직접 경험했다고 답한 것이다. 또한 영국 비영리단체 유기농무역협회 등이 소비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그린워싱에 대해 분노하거나 혐오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김 연구위원이 지목한 부작용의 두 번째 층위는 바로 이러한 분노가 소비자들로 하여금 기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등 기업과 소비자 간 신뢰관계를 무너뜨리는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사인 KPMG가 2023년 8월 18세 이상 영국의 소비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하니, 응답자의 1/3이 기업의 친환경 홍보가 거짓된 것으로 의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비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불매 운동 등의 의사표현도 적극 추진한다. 일부는 그린워싱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더 적극적인 대응도 나선다. 런던정경대학(LSE) 등이 ‘기후변화 소송 글로벌 트렌드:2023 스냅샷' 보고서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소비자들의 그린워싱 기업에 대한 소송 건수는 2020년엔 9건에 불과했는데, 2021년과 2022년엔 각각 27건과 26건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기후변화 관련 소송 건수의 약 10% 가량이 그린워싱과 관련한 소송인 것이다.

법률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룸버그 로가 집계한 내용을 봐도 2022년 미국에서 접수된 ESG 관련 고소 2700여건 중 환경 관련 내용이 1467건으로 가장 많았다.

기업의 경영 차원에서 이러한 이슈를 바라보자면, 우선 평판 저하나 수익 감소 등의 그린워싱 리스크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러한 그린워싱 리스크에 노출된 기업을 산업별로 보면 정유 및 가스 등 에너지 관련 기업이 가장 많으며, 그 다음이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비중이 높다.

유럽은행관리국(EBA)는 EU 각국의 금융 당국 30곳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는데, 은행의 그린워싱이 평판 리스크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비중이 80%에 달했다.

주요국 감독 당국이나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그린워싱 기업에 대한 조사나 처벌을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의 그린퍼티그로 인한 여파를 막기 위해 관련 규제 역시 강화하는 추세다. 앞서 사례처럼 금융권만 국한해 봐도 그러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골드만삭스가 운영하는 ESG 펀드의 투자대상에 술·담배·무기·석탄·원유 판매로 수입을 얻는 기업은 배제한다고 홍보한 것과는 달리, 이런 기업을 포함한 혐의로 3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또한 독일 검찰과 합동으로 도이치자산운용(DWS)의 그린워싱 펀드 운용 여부를 조사 중이다.

호주 증권투자위원회(ASIC)는 블랙록에 이어 운용자산 규모 세계 2위 자산운용사인 뱅가드그룹의 그린워싱 행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각종 법안과 규정으로 그린워싱 규제 벽을 높이는 것도 병행한다. EU의 경우 2023년 9월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친환경 홍보와 관련해 금지 행위를 규정하는 법안 도입에 합의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친환경 활동 결과와 같은 명확한 근거 없이 ‘친환경' ‘자연의' ‘생분해성' ‘기후중립' ‘에코 ‘탄소중립' 등의 표현을 제품에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또한 적합한 공공기관 등이 인증하지 않은 친환경 인증 라벨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했다.

미 SEC는 2023년 9월 투자회사가 표면적으로 ESG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것처럼 홍보하고, 실제로는 이와 무관한 회사에 투자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투자회사법 ‘명칭 규정(Name Rule)’ 개정안을 채택했다. 명칭 규정은 펀드 이름에 투자대상 관련 정보가 노출된 경우, 해당 투자대상이 펀드 자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다. ESG와 관련해서도 이를 준수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그린워싱의 부메랑인 그린퍼티그가 가시화되며 다양한 부작용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까. 본격적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최근 흡사한 사례가 실제 발생하고 있다.

가령 프랜차이즈 카페 등에서 음료 섭취시 사용하는 종이 빨대에 대해 그린퍼티그 현상이 일부 감지되고 있다. 친환경 제품이라 불편해도 참고 썼지만 알고보니 겉면에 합성수지를 코팅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는 등의 상황이었다.

그린퍼티그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역으로 볼 때 소비자들의 친환경 민감도가 그만큼 높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유럽이나 미국의 조사결과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2년 4월 MZ세대 3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4.5%가 ESG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 구매를 위해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기업 활동을 민감하게 평가하는 소비자들은 사소한 오해의 소지만으로도 그린워싱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부분이 누적되어 그린퍼티그로 악화하는 문제가 점차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실천 가능한 목표 제시와 본연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한다.

런던비즈니스스쿨 등이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등에 기고한 내용처럼 “8개의 친환경 목표를 제시하고 6개를 이행하는 것보다, 3개의 약속을 제시하고 3개 모두 실천하는 게 소비자에게 기업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데 유리하다"는 내용이다.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실제로 소비자조사 등을 통해 드러난 현실을 보면 가령 소비자가 기업의 그린워싱을 인식한 경우라고 해도 제품의 품질이 높으면 소비자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는 기업이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하며,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 품질 향상으로 경쟁력 제고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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